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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한 믿음은 치유와 구원의 은총을 입기 위한 가장 첫째 가는 조건입니다!

12월2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이스라엘은 신앙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신앙은 삶의 중심이요 전부, 존재의 이유요 최종적인 목표였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과 횡포로 셀수도 없이 나라를 빼앗기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유배를 떠났어도, 신앙 하나는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간직해왔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의 수호자들인 지도자들의 나태함과 타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부침과 쇠락을 거듭했습니다.

율법과 성전, 잡다한 예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신앙의 가장 본질인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 사랑의 실천은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이 사제들과 레위인들에게는 먹고 사는 수단, 생존 방식으로 전락했습니다.
신앙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는 오만과 논쟁의 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이비 지도자들의 그릇된 가르침 앞에, 참과 거짓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신앙은 악세사리요 도피처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신앙이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 경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와 참 신앙에로의 복귀를 호소하셨지만,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단적 불신앙과 완고함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인대장이 카파르나움에 머물고 계시던 예수님을 만나러옵니다.
그는 헤로데 안티파스 직속 이방인 장교였습니다.
말마디 그대로 그는 백명의 군인들을 부하로 두고 있는 장교였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중대장 계급 정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건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통해서 그가 얼마나 성숙하고 인간미 넘치며, 동시에 참된 신앙인인가를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첫마디 부터가 예수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8장 6절)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릅니다.
이를 통해 그가 지닌 신앙의 깊이를 잘 알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능을 지닌 분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병이나, 자신의 아들 딸의 치유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의 치유를 청하고 있습니다.

점점 백인대장이 마음에 쏙 드셨던 예수님께서는 즉시 그의 청을 수락하십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마태오 복음 8장 7절)

그러나 백인대장은 뜻밖의 말씀을 예수님께 건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8장 8절)

백인대장의 말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당시 율법 규정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유다 사람에게는 다른 민족 사람과 어울리거나 찾아가는 일이 불법임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8절)

이렇게 백인대장은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 모든 생각들이 성숙했고 신중했으며
배려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거기다 주님을 향한 깊은 신앙으로 가득했으니,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들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 마음의 표현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마태오 복음 8장 10절)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악령의 힘을 분쇄하는 메시아로서 하느님의 주권을 실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굳게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오늘 과연 우리에게는 백인대장이 지녔던 그 확고한 신앙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습니까?
본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종의 치유를 청하는 백인대장의 인간미와 자비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습니까?

강한 믿음은 치유와 구원의 은총을 입기 위한 가장 첫째 가는 조건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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