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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잘 했다. 너는 착한 종이로구나.”

11월20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불꽃처럼 살아가야겠습니다. 서해바다 한적한 곳에 저희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캠프장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 전, 캠프장에서 일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캠프가 끝나면 참새처럼 재잘대던 아이들이 떠나갑니다. 피정이 끝나면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한적한 바닷가에 남는 것이라곤 끝도 없는 적막함입니다.

그 적막함과 함께 저녁노을이 찾아듭니다. 붉게 물든 서녁 하늘을 넋 잃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일몰’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일출광경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일몰장면은 어쩐지 슬픕니다.

쓸쓸합니다. 그러나 장엄합니다. 찬란합니다. 마치도 달릴 곳을 다 달린 한 영혼이 이제 막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임종의 순간처럼 아름답습니다.

돈보스코 성인의 임종이 그랬습니다. 그의 얼굴은 수많은 일과 고뇌와 누적된 피로로 인해 초췌했지만, 그의 신체는 모든 에너지가 완전히 빠져나간 나머지 왜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영혼은 활활 불타오르는 석양과도 같았습니다.

수많은 어린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기에,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그의 영혼은 더 없이 당당했습니다.

돈보스코의 시신을 검안했던 의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런 시신은 정말 보기 드물었습니다. 마치도 모든 것이 다 타고 이제 겨우 재만 남은 것과도 같은 그런 시신이었습니다. 영혼이 빠져나간 그의 시신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신에는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완전히 시든 꽃과 같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금화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잘 사용해서 하느님께는 영광을 드리고 이웃들에게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돈 보스코의 임종을 묵상하면서 달란트를 잘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손과 발은, 우리의 삶은 그저 살결 매끄럽게, 주름살 없게 잘 가꾸었다가, 고운 모습을 간직한 채 이 세상 하직하라고 주신 선물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한 몸 잘 먹고 잘 살라고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라고 보내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에 보탬이 되라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데 기여하라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하라고 우리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로 이웃들에게 기쁨이 되고 선물이 되라고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을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하지 말고 불꽃처럼 살아가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확신합니다. 언젠가 다가올 우리의 마지막 날, 더 노력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이웃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도록, 더 기쁘게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도록, 오늘 우리 자신의 삶을 늘 돌아봐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