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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혹시라도 무늬만 제자, 짝퉁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11월6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며칠간 연이어 봉독된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 잔치 초대였습니다.
오늘 루카 복음사가는 결론을 내립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상의 초대장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이곳 지상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사실에 크게 기뻐하면서도, 예수님의 제자직 초대에는 크게 망설입니다.
그 이유는?
소명에 응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은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복음 14장 26~27절)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 지파의 조상 레위는 자신의 부모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모릅니다.”
그는 형제들과 절대 만나지 않았으며, 자식들마저 모른체 했습니다.
하느님 성전에 봉사하기 위해 가족을 칼처럼 끊어버린 것입니다.

성전 봉사를 이유로 가족에 대한 모든 의무를 부차적인 것으로 격하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네번 째 계명을 폐기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으셨습니다.

여기서 미워한다는 것은 셈족어의 표현으로, 어떤 사람, 어떤 대상을 의도적으로 2차적인 자리에 둔다거나 소홀히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의 진의(眞意)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불효하라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형제자매들과 등지라는 말씀도 결코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세상 모든 존재, 모든 대상에 앞서 하느님께 최우선권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육화강생으로 인해 이제 세상의 모든 질서 체계가 뒤바뀌었습니다.
그분은 이제 세상 만사 안에 첫째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 모든 인간들과 존재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 그분 존재는 모든 법중에서 가장 첫째가는 법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분의 크심과 완전하심, 새로움 앞에, 이 세상 모든 존재나 대상은 그림자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삶 안에서 예수님은 최우선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계신가요?
오늘 우리는 우리의 일상 안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기억하고 찬미하는 기도생활, 영적생활에 최우선권을 두고 있는가요?

오늘 우리는 그분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사랑의 삶, 사랑의 실천에 최우선권을 두고 있는가요?
혹시라도 일에 대한 욕심, 자리에 대한 욕심, 부차적인 대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예수님은 우리네 삶 속에서 첫번째 자리가 아니라, 가장 자리로 밀려나가 계신 것은 아닌가요?

혹시라도 무늬만 제자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 중독 증세, 취미활동 중독에 푹 빠져, 기도생활이나 영적 생활,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에는 무관심한,
짝퉁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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