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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상에서의 보상이 아니라 피안(彼岸)에서의 보상을 기대하십시오!

11월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유다 전통 안에서 식사(食事)에는 아주 큰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잔치나 축제 때에는 ‘ㄷ’자 모양의 식탁이 준비되었고, 3면에는 의자가 놓였습니다. 비어있는 공간으로는 종들이 드나들며 시중을 들었습니다.

유다인들은 포크나 나이프같은 식사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음식을 먹었기에, 식사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식사 전후 기도는 필수였습니다. 별도의 개인 접시는 준비되지 않고, 큰 그릇에 빵이나 요리가 담겨나오면,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스프나 국은 빵에 적셔 먹었습니다.

잔치집에서 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은 큰 친밀함과 친교의 표현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자신의 잔치상에 이왕이면 귀한 사람, 존경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 신분이 높은 사람을 초대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복음 14장 13~14절)

사실 과거 유다인들에게 있어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냉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될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규정으로 인해, 당시 장애인들이 받았던 싱처와 고통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공식적인 성전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지체장애인들은 꿈란 공동체에 편입될 수 없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 청각장애인들은 성전에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초세기 교회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바오로 사도께서 크게 분노하신 흔적이 서간 안에 남아있습니다. 코린토 교회 신자들의 경우, 만찬 식탁에서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대우가 벌어졌습니다. 폭식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굶주린 채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코린토 전서 11장 20~22절)

잔치 집 식탁에서 벌어지던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직접 보신 예수님께서는 강력한 도전장을 던지십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초대를 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사심없는 봉사를 실천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모든 것을 주면서도 기대하지 않는 사랑을 베풀라고 요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심없는 사랑의 실천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큰 선물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의 영원한 친교라는 은혜로운 선물이 상급으로 부여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보상이 아니라 피안(彼岸)에서의 보상을 기대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이 부단히 이 세상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에 고정시키라고 당부하십니다.

지상의 권세는 하느님의 때가 오면 약함으로 바뀔 것입니다. 반대로 지상에서의 약함은 하느님의 때가 오면 그분의 힘에 의해 큰 권능으로 바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나약하고 부족해보이는 사람들이 내적, 영적으로는 하느님 앞에 훨씬 부유한 능력자 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그들을 강하게 해주시고, 신앙의 빛은 그들에게 참 지혜를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