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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참 삶은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 깨어있는 삶, 현재에 충실한 삶, 주님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삶, 결국 사랑의 삶입니다!

11월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저녁식사를 마친 후, 마을 안길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칠 때였습니다. 어느 순간,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언제나 외투 호주머니 속에 얌전히 들어있던 스마트폰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거 큰 일 났다! 분실한 지가 얼마 안 지났는 데, 또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서둘러 이 호주머니, 저 호주머니 다 찾아봤지만 없었습니다.

점점 불길한 마음이 들고, ‘걸어 오다가 떨어트렸나?’ 하는 생각에 발길을 돌릴 때였습니다. 그 순간 제 한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혼자서 한참을 깔깔 웃었습니다.

묵주기도를 시작하기 전,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이라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플래스 기능을 켜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고 있었던 제 모습이 참으로 웃겼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매일의 일상 안에, 바로 내 손 안에 있는데, 많은 경우 그것을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위령의 날을 맞이하면서 새삼 느낍니다. 한 인간 존재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요, 숨결인데,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삽니다. 뿐만 아니라 삶과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인 죽음 역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죽음은 사실 우리의 삶 속에 이미 스며들어있습니다. 또한 삶이란 것도 죽음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미 ‘작은 죽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일선에서의 물러남, 질병, 노화, 소외, 실패, 고독… 우리는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안에 실재하는 다양한 죽음의 요소들을 대면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매일 작은 죽음을 체험합니다. 결국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또한 삶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모순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삶은 시시각각 죽음으로부터 위협받고 있기에 더욱 소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대로 죽음이 없다면 끝도 없이 반복될 죄와 악습, 병고와 고독…도대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죽음이 있어 기나긴 한 인간의 생이 정리되고 완성되니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요. 아리송하지만 결국 죽음 안에 삶이 있고 삶 안에 죽음이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 도달했을 때, 우리들의 지난 삶은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절대로 우리가 보낸 세월의 양으로 평가받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관건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하루하루를 얼마나 충만하고 의미있게 살았는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의미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표현합니다. 반대로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말합니다.

참 삶은 의미있는 삶, 가치있는 삶, 깨어있는 삶, 현재에 충실한 삶, 주님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삶, 결국 사랑의 삶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하루하루가 그저 하루 삼시세끼 섭취하고 연명하는 데 만족한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의미있고 충만한 삶으로 엮어가는 것, 축복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비결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분들, 그 송구하고 안타까운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살아계실 때 좀 더 자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것,
좀 더 따뜻하게 대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크게 공감합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의 애도와 추모가 끝나면, 어렵겠지만 일부로라도 재빨리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절대로 우울한 색조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샛노랗거나 연둣빛입니다. 온통 희망과 기쁨과 설렘의 분위기로 충만한 종말론입니다.

먼저 떠나신 분들은 이제 주님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나라에서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실 것입니다. 주님과 성모님, 수많은 성인성녀들과 함께 우리가 좀 더 기쁘고 충만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을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위령의 날 다시 한 번 기억해야 겠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유한한 육체가 소멸되는 순간은 우리 삶이 끝장나는 순간이 아니라 무한하신 사랑의 하느님과 결합되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죄스런 우리 삶이 용광로같이 뜨거운 하느님 사랑과 합일되는 기쁨의 순간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의 유한한 생명이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순간입니다. 결국 죽음은 희망의 종결이 아니라 희망이 지속되는 순간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