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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 위에서 다시 만납시다!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은혜롭게도 성인성녀들의 삶과 죽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지들을 방문하면서, 냉랭하게 식어버린 우리네 신앙생활에 활력이 더해지기 위해서, 성인성녀들의 생애에 대한 앎과, 그분들의 전구와 통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를 순례하면서, 초세기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교회 설립 및 성직자 영입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조선 천주교회 신자들은 교황님께 눈물어린 편지를 쓰고 또 썼습니다.
그러한 조선 천주교회 초기 신자들의 노력에 기꺼이 부응한 파리외방전교회 회원들의 노력이 얼마나 영웅적이었는지를, 또한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20대 초중반의 샛파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은 어딘지도 모르지만, 박해와 죽음 만이 기다리고 있는 머나먼 조선땅 입국을 시도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변장을 하고, 어두운 밤길에 별빛에 의지해서, 뱃길로 육로로, 천신만고 끝에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조선 땅을 밟았지만, 선교사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살을 깎는 추위와 굶주림, 박해의 칼날이었습니다.

젊디 젊은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들은 선배 선교사들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조선 선교사 파견이란 말은 백퍼센트 죽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조선의 고위 관리들은 우리를 위한 서슬퍼런 큰 칼들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파리외방전교회 회원들은 더없이 환한 얼굴로 “예!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당신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기 위해, 여기 대령했나이다.
기쁘게 조선으로 가겠습니다!” 라고 크게 외치셨습니다.

선교사 파견 미사가 끝나면, 신부님들은 동료들과 가족친지들과 지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더 이상 지상에서는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에, 다들 깊은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위에서 다시 만납시다!”

파리외방전교회 바로 옆에는, 성모님께서 기적의 메달을 보여주신 침묵의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1806~1876) 수녀님께서 생활하셨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수녀회 본원이 자리잡고 있더군요.

1830년 11월 27일 성모님께서는 카타리나 수련 수녀에게 발현하셔서, 이른바 기적의 메달 모형을 보여주시며, 부탁하십니다.

“이 모형으로 메달을 만들어라.
이 메달을 거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신뢰심을 지닌 사람에게는 한없는 은총이 내릴 것이다.”

카타리나 수녀님은 이 특별한 사건을 고해 사제에게 소상히 말씀드렸습니다.
알라델 신부님은 그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경청하면서도, 한 가지 당부를 덧붙였습니다.
“침묵 속에 겸손하게 수련생활을 계속하십시오!”

카타리나 수녀님은 지도 사제와 주교님의 조언에 따라 평생토록 침묵속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순종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물론 발현하신 성모님의 당부를 받들어, 장상들의 허락을 득한 후, 열심히 기적의 메달을 제작해 널리 전했습니다.

카타리나 수녀님은 1876년 선종하시기 불과 몇달 전,
평생에 걸쳐 간직해오셨던 성모님 관련 보고서를 장상 수녀님에게 제출했습니다.

1947년 7월 27일 카타리나 수녀님의 시성 미사를 집전하신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카타리나 수녀님은 침묵의 의무를 철저히 지킴으로서 성화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만년에 카타리나 수녀님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도구였을 뿐입니다.
성모님께서 제게 나타나신 것은 저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가 성모님을 의심할 수 없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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