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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탐욕과 독점으로 상처 입은 우리 사회에 가장 좋은 치유제는 소욕지족의 신선한 바람입니다!

10월21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살아 생전 법정 스님께서 평소 각별히 존경하던 자운 스님께 장문의 문안 편지를 올렸더니, 스님께서는 아주 간단한 답장을 보내셨더랍니다. 그 답장이 유명합니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소병소뇌(少病少惱)!’

해석하면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며, 작게 앓고 작게 걱정하라!’입니다.

평소 우리가 언제 행복해 합니까? 물론 엄청나고 대단한 대성공에 행복해 합니다. 로또 당첨 같은 기적 같은 일 앞에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기란 벼락맞는 것 보다 더 힘듭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된 행복은 작은 것에서 샘솟는 것 같습니다. 힘겨운 하루 일과를 끝내고 퇴근했을 때, 가족들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한 마디에 우리는 행복해 합니다. 내 작은 성취와 작은 성공에 함께 기뻐해주는 동료의 모습에 우리는 행복해 합니다.

빡세고 피곤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귀가하는 길에, 열차 시간이 많이 남아있길래, 이리 저리 산책을 하다가, 웬지 기품이 있어 보이는 커피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께서는 제대로 커피를 공부하신 전문가셨습니다. 그분의 해박한 설명을 들으며 조금 비싼 에티오피아 핸드 드립 커피를 한 잔 시켰습니다.

진한 품격이 느껴지는 한잔의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 있다보니, 하루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 순간에 확 가시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비싼 커피를 마셨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나 자신을 위해 이정도 투자하는 것 별로 나쁘지 않군! 나를 위한 품위있는 커피 한 잔, 하느님께서도 용납해주시겠지!

우리가 평소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은 뭔가 엄청나고 대단한 것에서 보다는 작고 소소한 것으부터 온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최근 복잡하게 돌아가는 시국을 바라보며 불교계에서도 던지는 말씀이 소욕지족입니다. 한 노승(老僧)께서는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인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끝도 없는 인간의 탐욕이라고 외치시며, 소욕지족으로 돌아가자고 외치십니다.

저 역시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토록 사분오열된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탐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세상 그 무엇이든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 불변의 진리입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보니, 장기 독재자가 속출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할 정도로 비극적이었습니다. 재물이란 것도 적당히 가지고,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공유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재물에 대한 과도한 탐욕의 결과 역시 불행하기 짝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자녀들에 대한 탐욕 역시 범국민적 자제와 절제가 요구됩니다. 다른 수많은 이웃 자녀들은 어찌되든 상관없이, 그저 내 자녀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과욕과 탐욕이 극단적 교육의 위기 시대를 초래했습니다. 공교육은 붕괴되고 사교육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입니다.

성장 계발 시대 엄청난 국가적 지원과 혜택을 받으며 성장하고 큰 이윤을 남긴 대기업들, 그 이윤을 고생한 직원들과 하청업체들과 통 크게 나누려는 마음, 그리고 사회의 공익을 위한 환원의 마음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나친 탐욕의 결과는 독점이요 부패, 그 결과는 공멸이요 죽음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탐욕을 조심하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복음 12장 15절)

다양한 분야에 걸친 탐욕과 독점으로 상처 입은 우리 사회에 가장 좋은 치유제는 범국민적 소욕지족 운동, 소욕지족의 신선한 바람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