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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펼치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자비의 책, 루카 복음!

10월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요즘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가’ ‘역사학자’들께서 지닌 소명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균형잡힌 시선, 허구가 아니라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아닐까요?

역사가들은 각자 나름대로 역사를 바라보는 자기만의 고유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관(史觀) 혹은 역사의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최근 기승을 부리며 우리 선량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관이 있습니다.
식민사관(植民史觀)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일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일본인들보다 더 일제를 더 찬양합니다.
일본강점기 시절을 그리워하고 두둔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일제를 미화하고 찬양합니다.
일제를 통해 조선이 성장했다고 억지를 부릅니다.
그릇된 사관이 초래한 불행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루카복음사가 역시 당대 걸출한 역사가이자 위대한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희랍어에 능통한 이민족 출신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가 저술한 복음서 역시 유다 역사나 지리에 낯설었던 이방계 그리스도인 독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루카복음사가는 복음서를 기술하면서 이스라엘의 지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루카복음 24장 13절)

또한 히브리어나 아람어가 등장하면 항상 희랍어로 소개해줍니다.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루카복음7장 34절)
참으로 친절하고 자상한 루카복음사가입니다.
그럼 이제 루카복음사가의 사관(史觀)을 조금 살펴볼까요?

루카복음사가가 이방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에게 있어 하느님 백성에 대한 개념은 보다 보편적입니다.

참 하느님 백성은 율법을 목숨처럼 소중이 여기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 유다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유연하고 개방적인 역사관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역사관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루카복음사가는 당시 유다인들의 시각에서 절대로 구원의 대상에 들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태생적 죄인들, 이방인들, 세리들, 창녀들, 양치는 사람들, 고리대금업자들, 개똥 수거인들까지도 모두 구원의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이처럼 루카복음사가는 아무도 돌보지 않던 가난하고 방황하던 양떼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지가 얼마나 각별하고 강렬한 것인지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복음서를 일컬어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서’  ‘자비의 복음서’‘여인들의 복음서’라고까지 칭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쳐죽일 놈’ ‘민족의 배신자’로 생각하며 침까지 뱉던 세리들, 죄인의 대명사들이었던 이방인들, 악령들린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셔서, 친히 그들과 눈을 맞추시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시는 예수님의 따뜻하고 자상한 모습을 상세히 우리에게 전해주신 루카복음사가에게 마음 깊이 감사해야겠습니다.

루카복음사가를 본받아 부족하고 나약한 이웃을 매몰찬 시선이 아니라 따뜻하고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의 하느님께서 냉혹한 관찰자, 심판자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더없이 자상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위로자 예수님으로 오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노력을 계속해야겠습니다.

펼치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복음,
구절 구절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가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복음, 힘들때 마다 손에 들면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는 루카 복음서를 좀 더 자주 읽고 묵상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