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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열심히 기도했다면, 그 힘을 바탕으로 이웃 사랑 실천의 장으로 나아가야 마땅합니다!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교회 역사 안에 수도 생활 호황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30여년 전 한국 교회 안에도 그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수녀회마다 입회자가 줄을 섰더랬습니다.

큰 수녀회의 경우, 한해 입회자 수가 50여명이나 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침실도 부족하고 성당도 협소해, 생활하는 데 큰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런 시절 떠돌던 우스갯 소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잘 파악이 안되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전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수녀원 숫자랍니다.

다양한 수녀회 이름 아래, 각기 다른 카리스마를 지닌 수많은 수녀님들이, 제각각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주님의 딸이자 종으로서 봉헌생활을 해나가고 계십니다.

한 봉쇄 수녀원에 강의를 갔었는데, 강의 때 조차도 강사와 수녀님들의 공간은 분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창살 이쪽 편에 앉아서 강의를 했고,

수녀님들은 건너편에 앉아서 강의를 들으셨습니다.
수녀님들은 자신들을 수녀원 봉쇄 구역 안에 가두고, 자나깨나 하느님을 찾는 동시에,
수녀원 담 밖의 동료 이웃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한번은 다른 수녀원을 방문했는데, 그 수녀원은 국철역 근처 청소년 출입 금지 구역 안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분들과 똑같은 주거 조건 속에서 사시면서, 그저 그분들의 이웃이 되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살레시오 수녀님들은 하루 온 종일 바빠 죽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수도자로서 기도와 묵상에 충실해야 하고, 미사도 봉헌합니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학교로 달려갑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담임교사로서 분주한 하루를 보냅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조차도 아이들과 같이 보냅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수녀원으로 돌아오는데, 그냥 쉬는 법이 없습니다.
또 다시 저녁 시간 수도자로서의 삶이 이어집니다.

보시는 바처럼 하루 온종일을 기도와 묵상·관상, 노동으로 보내는 관상 수녀회가 있는가 하면, 하루 온종일을 강도 높은 활동으로 보내는 활동 수녀회가 있습니다.

그럼 둘 중 어느 수녀회가 더 주님 마음에 드는 수녀회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교회와 주님, 그리고 동료 이웃을 위해 관상 수녀회든, 활동 수녀회든, 둘 다 소중하고, 둘 다 나름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마리아와 마르타 이야기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살짝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시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마리아의 판정승을 선포하는 형국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복음 10장 41~42절)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진의(眞意)는 마르타의 봉사활동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의 실천은 언제나 말씀이나 기도가 전제되어야 하고, 굳게 결부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바로 전 대목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공동체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봉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주님 말씀에 대한 경청과 기도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바로 뒷부분에 ‘마리아와 마르타의 비유’를 배치시킨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비유를 묵상하다보면, 표면적으로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에 귀기울이는 마리아만 칭찬을 듣고, 땀을 뻘뻘 흘리며 주방에서 지지고 볶는 마르타의
봉사활동은 무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먼저 적극적인 봉사활동이 강조되었으며, 이어지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비유를 통해 다른 한쪽 측면인 영적 생활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한 신앙인의 삶의 방향이 마리아나 마르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통해 깊은 영적 생활에 몰입을 했다면,
그냥 그 상태로 자기도취나 황홀경에 빠져 있어서만은 절대 안 됩니다.

열심히 기도했다면, 그 힘을 바탕으로 이웃 사랑 실천의 장으로 나아가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요, 활동하는 관상가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희 살레시오회와 가족 관계를 맺고 있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님들께서 장장 36년에 걸쳐 운영해오고 계시는 교회 월간지와 출판사가 있는데, 바로 ‘생활성서’입니다.

최근 생활성서에 근무하시는 수녀님들을 만났는데, 얼굴 마다 수심이 가득하더군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최근 월간지 구독자 수의 급감으로 인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계신답니다.
이미 몇몇 다른 교회 월간지들은 폐간이나 정간이 되었답니다.

‘이러다가 하나하나 다 폐간되면 어떡하나?’하는 큰 걱정이 앞섰습니다.
생활성서사의 경우 창간이래 36년 세월 동안, 문서 선교 차원에서 큰 역할을 해왔더군요.

다들 숨죽이고 있던 군부 독재 시절에도 참 예언자로서의 목소리를 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쇄신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 환경, 평화,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한 나눔 운동도 지속적으로 펼쳐왔습니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이태석 저)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강길웅 저) 같은 명저(名著)들을 꾸준히 출간해서, 신자들의 영성생활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여정 성서, 은빛 성서, 어린이 성서 등 각계각층의 신자들의 성경 공부 교재를 지속적으로 출간해왔습니다.

직접 비신자들을 방문해서 1대 1로 선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감동적인 양서(良書)나 유익한 교회 잡지를 출간하고 보급하는 것, 역시 아주 좋은 선교 방법입니다.
이른바 ‘문서 선교’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는 언제나 확신합니다.
때로 한 줄의 문장, 한권의 책이 한 인생을 살릴 수 있다는 것, 한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육체를 위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위해,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독서의 계절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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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