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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억지로가 아니라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신나게 묵주 기도를 바치십시오!

10월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연중 제27주간 월요일]

한 시골 본당 신부님의 묵주 기도 사랑에 큰 존경을 보냅니다. 언제나 본당을 지키시며, 틈만 나면 본당 성모상 앞을 서성이십니다. 뭐하시나 가만히 보면, 이리저리 산책하시면서 묵주 기도를 바치십니다. 뒷짐진 손엔 언제나 커다란 묵주가 들려져있습니다.

그런 멋진 신부님의 모습에, 본당 신자들뿐 아니라, 성당 옆을 지나가는 비신자들도 큰 감동을 받습니다. 묵주 기도하시는 신부님 모습, 그 자체가 훌륭한 영적 지도요, 전교가 되는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부님께서는 짬짬이 묵주를 손수 제작하십니다. 실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모양도 예쁘고 튼튼합니다.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묵주가 수북합니다. 만나는 신자들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신부님께서는 단 한 번도 신자들에게 묵주 기도 많이 바치라고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묵주 기도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신 신부님을 따라 신자들 역시 묵주 기도의 맛에 흠뻑 빠져 살아갑니다.

저희 살레시안들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다들 운동장으로 뛰어나갑니다. 아이들과 어울려 한바탕 신나게 축구시합을 합니다. 운동 시간이 끝나면 모두의 발길은 자연스레 성모상 앞으로 향합니다.

누군가의 선창으로 천천히 운동장을 걸으면서 묵주 기도를 바칩니다. 살레시안들과 청소년들이 한 무리가 되어 우렁찬 목소리로 묵주 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입니다. 묵주 기도 중에 고백성사가 필요한 아이들은 신부님들의 팔을 슬며시 끌어당깁니다.

묵주 기도가 끝날 무렵 모두는 다시 성모상 앞으로 다가가 성모님 성가를 한곡 부르지요. 마지막 순서로 원장 신부님께서 앞으로 나가셔서, 짧지만 따뜻한 밤인사를 건넵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세계 돈보스코 오라토리오마다 똑같이 펼쳐지는 감동적인 저녁 행사입니다. 살레시안들은 성모님께서 당신 사랑의 망토로 공동체와 아이들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며 묵주 기도를 바칩니다.

오늘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묵주 기도는 수준 낮은 기도가 절대로 아닙니다. 초보 신자들만을 위한 기도 역시 아닙니다. 숙제처럼 빨리 빨리 해치울 기도가 아닙니다. 잡념 속에 성모송만 되풀이하는 기도도 아닙니다. 보고를 위해 초스피드로 끝내야 할 기도도 아닙니다.

묵주 기도는 기도 중에 기도입니다.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묵상 기도요, 더 나아가서 관상 기도입니다. 입으로는 성모송을 외지만 정신과 마음으로는 각 단의 신비에 걸맞는 예수님의 생애를 천천히 묵상하는 영적 훈련을 반복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성인성녀들은 다들 성모님을 각별히 사랑하고 공경했습니다. 그 사랑과 공경의 표시로 묵주 기도를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의 경우 묵주기도를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주변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묵주’라고 불렀습니다. 살아 생전 그는 언제나 묵주를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늘 묵주 기도 바치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 앞에 공적으로 드러냄으로서 묵주 기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저와 싸우는 악령의 힘은 엄청납니다. 이 전투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바로 묵주 기도입니다.”

성모님을 얼마나 사랑하셨던지 ‘성모님의 교황’이란 애칭까지 얻으셨던 요한 23세 교황님은 묵주 기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통해,
성모님을 향한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묵주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묵주 기도는 기도의 최고 수단입니다. 묵주 기도는 주님의 육화와 구원의 드라마를 우리 마음에 제공합니다.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이신 동정녀 성모 마리아에게 매일 저녁마다 묵주 기도를 바칠 것을 약속했고 평생토록 실천했습니다.”

저 역시 요즘 묵주 기도의 맛에 푹 빠져 살아갑니다. 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좋아하는 장소에서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질 무렵이면, 수녀원 뒷길이나 강가 산책로, 산사 초입 같이 편안한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전에는 하루에 한번의 신비만 바쳤는데, 요즘은 가급적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네 신비를 다 묵상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총 소요 시간은 한 시간 정도입니다.

때로 지향을 두고 바칠 때도 있지만, 주로 특별한 지향 없이 성모님과 함께 산책하면서,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마음으로 묵주 기도를 바칩니다. 하루 일과 중에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매일 네 신비를 다 묵상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니,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자연스레 하루 한번 예수님의 일생, 삶과 죽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성모님,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성모님과 예수님께서 내 인생에 아주 가까이 동행하고 계심을 실감하게 됩니다.

묵주 기도 성월을 맞아, 조금 천천히 묵주 기도를 바쳐보시라고 초대합니다. 가급적 네 신비 모두를 묵상해보시기를 초대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묵주 기도를 억지로 바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가장 괴로운 얼굴로 묵주 기도를 바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기쁜 마음으로, 신나게 묵주 기도를 바쳐보시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