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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 외투를 본래의 주인인 저 가난한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10월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연중 제26주간 금요일]

산책을 나갔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강아지를 만났습니다. 보아하니 족보와는 거리가 먼 강아지, 잡종 중에 잡종 강아지였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짖지도 않았습니다. 손만 내밀면 그저 좋아서 꼬리를 흔들며 손을 핥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주인 몰래 들고 오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녀석이 그렇게 예뻤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녀석이 송아지나 코끼리 만해도 예뻐서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까요? 녀석이 그리도 예뻤던 이유는 작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시선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분명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부담스러워하실 것입니다.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당신 품에 꼭 안아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작은 사람, 겸손한 인간을 총애하신다는 진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그의 한없는 겸손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칭호’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본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랫사람’, ‘작고 가난한 사람’, ‘천한 사람’, ‘모든 사람의 종’, ‘다른 형제들의 발아래 있는 사람’, ‘죄인 중의 죄인’, ‘주 하느님의 부당한 종’등으로 자신을 칭했습니다. 그의 겸손은 예수님의 겸손을 판박이처럼 빼닮았습니다.

그는 지속적인 겸손을 유지하려고 집도, 수도원도, 아무런 재산도 지니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의 덕을 유지하려고 사제직에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수도회 총장이 되었지만 갓 입회한 지원자에게도 순명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수도원 들어와서 참으로 멋진 선배 사제를 봤습니다. 당신께 들어오는 좋은 선물들은 모두 저처럼 ‘없어 보이는’ 후배들이나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십니다. 당신은 늘 노숙인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 선배가 인사발령이 나서 다른 소임지로 떠나실 때였습니다. 다들 수도원 마당에 모여서 인사를 드리는데, 깜짝 놀란 것이 이삿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짐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달랑 손가방 두 개가 전부였습니다. 그걸 손수 양손에 들고 대중교통으로 그렇게 떠나가셨습니다.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홀연히 떠나가는 뒷모습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프란치스코가 살아가셨던 중세기 가톨릭교회의 모습은 부끄러운 구석이 많았습니다. 귀감이 되어야 할 고위 성직자들은 제 몫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지도자들이 갖은 이권에 개입하여 막대한 부를 축척했습니다.

위풍당당한 대성전들과 수준 높은 예술작품 등으로 외관상 교회는 활짝 꽃피어났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회칠한 무덤 같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자취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암울한 시절,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모습, 가장 가난한 모습, 가장 겸손한 모습,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로 대중들 앞에 등장합니다.

지닌 것이라고는 지독한 고행과 극기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몸뚱이 하나뿐인 그가 부패일로를 걷고 있던 제도교회와의 정면대결을 펼쳤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정신이나 이상, 영성으로만 추종한 것이 아니라, 100% 있는 그대로, 실제로, 구체적으로, 온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회심이후 한 평생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기쁘게 했습니다. 완벽한 가난의 실천을 가로막는 무수한 장벽들과의 피나는 투쟁이 그의 일생이었습니다.

그는 길을 가다가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서슴없이 내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 외투를 본래의 주인인 저 가난한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 외투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날 때 까지만 우리가 잠시 빌린 것입니다.

나는 결코 도둑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필요한 사람에게 우리 것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둑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