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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모님은 예수님을 잉태하신 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신 분입니다!

9월24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성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신 이유는 출가하신 예수님께서 잘 지내고 계시는지, 건강을 괜찮은지? 끼니나 잘 챙겨드시는지? 보통 어머니와 똑같은 마음으로 찾아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거처하시는 장소에 도착해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군중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자 가운데 한 명이 성모님을 알아보고서는 안으로 달려들어가 예수님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루카 복음 8장 20절)

그 순간, 제자들과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만나러 나가실 것으로 예상했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이었다면, 반갑고 안쓰런 마음에, 만사 제쳐놓고 맨발로 뛰쳐나가 인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안으로 정중히 모신 다음, 제자들 인사도 시키고, 맛있는 것도 대접해드리고 이렇게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어머니, 제가 걱정되서 찾아오셨군요. 제가 잘 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머니 건강이나 잘 챙기세요.”

그리고는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 빼서 손에 쥐어드리면서, “돌아가시는 길에 맛있는 거 사드세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을 한번 보십시오. 보편적이고 통상적인 처신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멀리서 오셨다는데, 밖에 나가보지도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정말이지 특별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복음 8장 21절)

이 말씀에 어떤 사람들은 오해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께 대한 효심이 부족한 것일까? 형제들을 하찮게 여기셨을까? 그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혈통과 가족 관계에 따라 이스라엘의 구성원임을 인정하는 구약성경의 친족법을 완전히 뒤집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 이루어지는 진정한 가족 관계, 다시 말해서 종말론적 가족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피와 살을 나누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안에 한 가족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라는 아드님의 말씀으로 인해 성모님의 마음이 살짝 서운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여종으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했던 신앙인이셨습니다. 성모님은 언제나 아들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잘 경청했고, 마음에 간직했으며, 실천에 옮기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동시에, 예수님의 가장 충실한 제자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신 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고 출산하신 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언제나 진지하게 경청하셨고, 마음 깊숙히 간직하셨으며, 침묵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셨으며, 늘 진리만 말씀하신 성모님을 바라봅니다. 동시에 너무나 경박하고 천박하며, 조심성 없고 거짓된 말이 난무하는 오늘 우리 시대를 걱정합니다.

지적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반짝한 우리 대학생들 앞에 선 한 교수가 또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왜곡된 역사, 친일 망언을 남발해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 교수가 인용한 망언의 출처는? 아니나 다를까, 거짓과 왜곡이 전부인 ‘반일종족주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제게 책은 절친한 친구 이상이었습니다. 언제나 책은 흥미거리와 배울거리로 가득찬 보물창고, 새로운 세상과 위대한 인물, 신선한 사상과 가치관을 접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그간 책으로부터 받은 위로와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은 예외이더군요. 읽는 내내 강한 불쾌감과 부끄러움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자들은 스스로를 일제강점기 역사에 있어서는 최고의 전문가라고 자화자찬하면서, 이런저런 얼토당토 않은 주장들을 펼쳐놓는데… 비전문가인 제가 봐도 여기저기 헛점 투성이입니다.

부실하고 제한된 자료나 증언들을 정확한 근거인냥 부풀려 제시하면서, 대단한 연구 결과인양 자랑스럽게 나열합니다. 결론은 패전국 일본과 이 땅의 친일학자들이 결탁한 결과물인 친일사관(親日史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한 마디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향수로 가득한 매국 친일 학자들의 일제 찬양으로 도배된 책일 뿐입니다.

그들이 또한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일제 강점기 초기 시절, 총독부는 대대적인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했는데, 당시 만들어진 토지 대장과 지적도는 아직까지 토지 행정의 기초 자료로 긴요하게 사용되고 있지 않느냐고 강변합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고마워하랍니다. 이런 식으로 조선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근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우리나라에 그런 작업을 벌였을까요? 이유는 너무나 뻔합니다. 식량이나 자원의 수탈을 위한 기초작업일 뿐입니다. 더 웃기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웃을 주장인데, 쌀을 수탈당한 것이 아니라 수출했답니다.

조선 농민 입장에서 일본이라는 대규모 쌀 수출 시장이 생겼으니 반길 일이었답니다. 고명한 교수님들께서는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한반도 강점과 합병이란는 원초적인 범죄 앞에 그 어떤 명분도 정당화될 수가 없음은 왜 모르시는 걸까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모든 페이지는, 역사 왜곡과 일본제국주의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반면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에 대한 조롱과 비하로 가득합니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과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님들을 향한 모욕적 발언으로 즐비합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을 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거금을 들여 산 것을 정말 후회하고 있습니다. 읽고 나서는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부끄러움에 저도 모르게 책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이 책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합니다. 우리 대학생들이 제대로 된 역사 의식이나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노력 없이 이 역겨운 책을 읽는다거나 말도 안되는 강의를 듣는다면, 또 다른 반민족 친일 인사들이 우르르 양산되는 것이 아닌가, 큰 걱정이 앞섭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침묵을 통한 동조로 일관했던 한국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이었던만큼, 더 이상 또 다른 친일행위나 왜곡 앞에서의 침묵은 없어야겠습니다. 정의의 하느님께서 거짓과 안하무인, 천박함과 뻔뻔함뿐인 저들을 결코 가만 두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속히 이 참혹하고 부끄러운 시절이 가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날이 도래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