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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불현듯 다가올 ‘마지막 날’을 위해, 지금 당장 신속하게 회개의 결단을 내리십시오.

(연중 제25주일)

예수님의 비유로 들어하신 말씀들은 당대 ‘가방끈’이 짧은 사람들이나 가난한 백성들의 귀에도 쏙쏙 들어올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비유를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율법 교사나 지도자들의 고리타분하고 난해한 가르침과는 달리,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도 환호하고 박수를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신 ‘불의한 집사’ 혹은 ‘약은 청지기’의 비유 말씀은 꽤나 난해합니다. 몇 번을 되새김질하며 읽어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특별한 비유를 통해 강조하시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사실 불의한 집사의 행동 하나 하나는 명백한 범법행위였습니다. 따라서 재판에 넘겨져야 마땅합니다.

그는 주인의 재산 관리를 총 책임지는 담당자였습니다.집사가 주인 허락도 없이 재산을 낭비했으니, 절도죄에 해당되겠습니다.

비리가 주인에게 발각되자,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빚 문서를 위조했으니, 공문서 위조죄에 해당되겠습니다.

불의한 집사는 갖은 비리의 종합선물셋트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특별하게도 주인은 불의한 집사가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합니다.

이 비유 앞에 많은 분들이 ‘이게 대체 무슨 말씀인가? 이렇게 알아듣기 힘들어서야! 대체 주장하시는 바가 무언인가?’하고 고민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집사의 비리와 위법행위를 칭찬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는 불의한 집사의 민첩하고 슬기로운 처신, 신속 정확한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칭찬하셨습니다.

긴박하고 다급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탈출구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불의한 집사가 현명하게 처신했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비리와 불법 행위가 용서되거나 의롭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편법적인 행동으로 인해 끝까지 불의한 집사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과 관련해서 불의를 저지를 것이 아니라, 불현듯 다가올 ‘마지막 날’을 위해, 지금 당장 신속하게 회개의 결단을 내릴 것을, 그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세상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현세적 이익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면서, 할 짓 못할 짓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빛의 자녀들 역시 자신들 영혼의 유익을 위해, 불의한 집사처럼 목숨을 걸 정도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망설이거나 지체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이 순간, 신속히 결단을 내리라는 요청이 불의한 집사 비유의 핵심입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불과 4~50년 전만 해도 60세까지 살았으면 장수했다고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80에 세상을 뜨시면 살짝 아쉬을 정도입니다.

다들 길어진 노년기에 대비해서 걱정도 많고, 또 각자 나름 철저히 준비를 하십니다. 재취직 계획, 넉넉한 연금 수령을 위한 준비, 정기적인 건강검진, 적당한 운동, 철저한 식단 관리…

그러나 그러한 육적인 준비에 비해 영적인 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 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90퍼센트, 100퍼센트 육적인 준비에만 몰두하고 계시다면, 10퍼센트, 아니면 20퍼센트 정도 ‘뚝!’ 떼어 영적인 준비에 할애해 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현세적 재산은 엄청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불완전한 것입니다. 지금은 죽기살기로 꽉 움켜쥐고 있지만, 불과 10년, 20년, 30년 뒤면 고스란히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현세의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세의 재물로는 조만간 반드시 다가올 죽음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향한 사심없는 자선과 희사는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우리를 적극적으로 변호해주는 가장 좋은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죄가 아무리 크다 해도,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부당하다 해도, 우리가 지상에서 행한 자선과 희사를 통해 우리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대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물이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백배로 보상받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빌려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거처에서 우리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땅의 재물을 가진 사람들이여,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을 엽시다.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 줍시다. 우리 것이 아닌 물질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이가 됩시다.”(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교부)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