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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죄인들의 주님은 세세대대로 찬미받으소서!

9월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언젠가 같이 살던 아이가 초대형 사건을 저지르고 난후, 뒷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조직원 비슷한 분들과 합의와 담판을 짓기 위해, 몇 차례 만나뵌 적이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존재 자체로 엄청난 포스가 느껴지더군요. 그분들 뵈면서 한때 우후죽순처럼 양산됐던 조폭 미화 영화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와 같은 의리라든지 순박함, 유머러스함과는 거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개념있는 배우로 존경받는 정우성 배우 같은 경우, 미화된 조폭 영화로 인해 우리 청소년들이 받을 악영향을 고려해, 조폭 영화에는 일체 출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분들, 한 마디로 얄짤 없었습니다. 타협이나 조율은 시도해볼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듭 대화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그분들도 우리와 비슷한 모순투성이에, 결핍투성이인 한 나약한 인간 존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벗어날수 없는 상황에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저 습관적으로 음지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라, 하지 말아야 할 반사회적 행동이지만, 자꾸 반복하다보니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한번 크게 바꿔보려고 고민해보지만, 조직 나름의 규율도 있고, 세상 사람들의 편견도 크고, 놀던 물을 바꾸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회심 이전 마태오 복음사가의 삶이 꼭 그랬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이방인·창녀와 더불어 상종하지 말아야 할 직업군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 머릿속에 세리=죄인이란 등식이 들어있었습니다. 당시 세리들의 악행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백성들 사이에서 이런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세리가 출몰하면 집안의 기둥조차 무서워 떤다!’
당시 세리들은 조직원들과 비슷한 형태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준 후, 제 때 갚지 못하면, 찾아가서 ‘와장창’ 소리와 함께, 손에 잡히는 대로 기물을 집어던지고 횡포를 부렸습니다. 집을 빼앗고 토지를 강탈해 갔습니다.

마태오의 경우 원래 이름은 레위로 추정됩니다. 예수님의 두번째 고향이라 다를 바 없는 카파르나움 세관에서 세금 징수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세리들이 복무 규정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적정한 세금만 징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들은 부당한 방업으로 고리대금업, 사채업, 환전업 등 부업을 병행하며, 동족들을 착취해 자신의 배를 원없이 채웠습니다. 자연스레 백성들은 세리들을 독사처럼 싫어했으며, 민족의 배신자요 매국노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 예수님께서 당신의 인류 구원 사업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으로, 열두 명의 사도를 선발하시는데, 그중 하나로 세리 마태오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눈에 이것은 완전 미친 짓이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 정도의 신분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어부나 농부들 가운데서 뽑았다면, 큰 마음으로 봐줄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상종해서는 안될 인간, 가난한 백성들을 갈취하고 괴롭히던 매국노, 인간 취급도 못받던 세리 마태오를 떡하니 제자로 뽑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해 안되는 선택을 보고, 저 단체의 미래는 불을 보는듯이 뻔하다. 폭망·쫄망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세리 마태오의 제자단 가입은 당시 유다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 못할 희대의 스캔들이었습니다. 뒷담화하기 좋아하던 바리사이들은 틈만 나면 수군거렸고, 마침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따졌습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태오 복음 9장 11절)

이런 그들의 속마음을 파악하신 말씀이 그들의 정곡을 찌릅니다. 사이다 같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만성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입니다. 너무나 통쾌하고 속이 다 시원합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왔다.”(마태오 복음 9장 12~13절)

역대급 대죄인 마태오를 당신의 제자로 삼아주신 예수님의 활짝 열린 개방성을 묵상하며, 똑같은 죄인인 저 역시 주님께 감지덕지하며, 그저 감사의 찬가를 반복할 뿐입니다.

“저 같이 부당한 죄인을 당신 가까이 불러주신 자비하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홍빛보다 붉은 감당하기 힘든 죄들, 머릿칼보다 많은 숱한 죄들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롭게 당신의 제자로 불러주시니, 온몸과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죄인들의 주님은 세세대대로 찬미받으소서! 저는 그저 매일 좋으신 주님 자비와 은총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어제의 부끄러움과 비참함을 딛고 다시 한번 기꺼이 일어서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