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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멸망이 아니라 영생, 심판이 아니라 구원!

9월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세례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한 햇수는 점점 늘어나지만, 그에 비례해서 신앙의 깊이가 그리 깊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학교에 입학하고 수도회·수녀회에 입회해서, 오랜 양성 기간을 끝내고 봉헌생활자로 살아가지만, 목표했던 바처럼 영성생활이 일취월장하지 않고, 지지부진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이유를 들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출발점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신앙의 대상이요, 우리 영성 생활의 기초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성찰하는 작업입니다.

은연 중에 우리는 꽤나 두렵고 경직된 하느님 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언젠가 도래할 종말을 하느님의 결정적인 심판이 이루어질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날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유다교 묵시문학의 영향 탓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예수님을 무지막지한 심판자로만 생각하는 것, 우리 신앙생활에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니, 언제나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바리사이계 유다 최고위원이었지만, 진리를 향해 열려있던 신앙인이었던 니코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유다인들 대부분은 무서운 심판자로서의 메시아 사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조만간 나타날 메시아를 정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엄격한 집행자로서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이요 신앙의 대상이신 하느님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니,유다인들의 신앙 생활이 부담스럽고, 힘겨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그릇된 하느님 상, 왜곡된 메시아 상을 바로잡기 위해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셨고, 공생활 기간 내내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온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복음 3장 16~17절)

위 명문장은 하느님 아버지의 인류 구원 사업의 목적, 방법, 결론을 짧게 요약하고 있는데 이를 더 간단히 요약한다면 이렇습니다.

“멸망이 아니라 영생, 심판이 아니라 구원!”
우리는 기도할 때, 언젠가 세월이 흘러 그분 대전으로 나아갈 때, 그간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의 대대적인 전환 작업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과 인간 각자를 심판하러 오신 것이 절대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분 육화강생의 목적은 멸망과 심판이 아니라 영생과 구원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 각자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향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심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간의 삶이 어떠했든 그분을 굳게 믿는 사람은 구원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은 벌써 그분으로부터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내세(來世)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생활로 인해 결정됩니다. 다시 말해 영원은 현재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그 사랑의 화신(化身)인 예수님께서 어찌 연약하고 가련한 인간을 멸망시키고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 하느님이나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기 보다는 우리 인간 각자가 스스로 심판을 초래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 인간 각자는 하느님과 예수님께 대한 신앙 혹은 불신의 결과로 구원 혹은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해 결단을 촉구하셨고, 우리 인간 각자의 결단은 구원 혹은 멸망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고 은혜롭게도 멸망을 피하고 구원을 얻는 방법, 누워서 죽먹기 보다 더 쉽습니다. 눈을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외아들,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하느님으로 고백했다면, 일체의 다른 모든 우상 숭배를 끊는 것입니다.

죽음과 사후 세계, 하느님과 심판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고 묵상하셨던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여사의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은 순식간에,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있었던 순간순간의 모습에 대한 생각을 상세하게 읽게 될 것입니다. 모든 행동을 기억하게 되고, 여러분이 내뱉은 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동안, 여러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하느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무시해버린 여러분 자신을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큰 적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