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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덕행만이 죽은 사람의 동반자입니다. 자비만이 죽은 사람을 따라갑니다!

9월13일 [한가위/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한가위 보내십시오.♧

아무 것도 아닌 우리, 먼지요 티끌 같은 우리를 생명으로 불러주시고, 이토록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끽하라고 초대해 주신 하느님과 조상들을 기억하고 깊이 감사드리는 명절입니다.

어린 시절, 선친께서 주도하시는 명절 제사에 온 가족이 정성껏 예를 올리고, 수십 번도 더 절을 반복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무릎이 아프도록 절을 계속하고, 마치 조상님들이 제삿상 앞에 앉아계시는 듯, 술잔을 올려드리고, 젓가락을 이곳 저곳 옮겨드리던 기억들도 생생합니다.

조상들의 혼백이 들어오실수 있도록 대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든지, 제사가 끝난 뒤에는 객귀(客鬼)들을 위해 대문 앞에 객귀밥을 내놓던 것을 보고서는 속으로 엄청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돌아보니 그런 제사 풍습은 우리에게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전달해 주신
조상님들의 은혜를 기억하는 참으로 정겨운 풍습입니다. 마치 살아 생전 조상님을 대하듯, 따뜻하게 살갑게 지극정성으로 밥 한끼 지어 올리는, 참으로 마음 훈훈한 전통입니다.

소중한 사람이나 존재는 우리 곁을 떠날 때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중한 무언가를 내게 남겨둔 채 떠나가거나 내게서 소중한 무언가를 떼어내 가져갑니다.

한 사람을 향해 줄달음치던 감정은 생물과 같아서, 그 사람이 사라지거나 사랑이 소멸해도 곧장 죽지 않습니다.(이기주, ‘한때 소중했던 것들’, 달)

잠시 우리 보다 먼저 떠나간 사람들, 때로 가슴 후벼 파도록 보고 싶지만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 사람…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님 자비의 품안에 편히 쉬고 있을테니, 허전하고 아쉽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떠나보내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주님 은총 안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희망하며, 쓸쓸한 마음조차 주님께 봉헌하면 좋겠습니다.

과하지 않고 소박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수고를 분담하면서 제사상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제사 준비 문제로 서로 마음 불편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들끼리 안부를 묻고, 조상님들과의 인연과 추억을 회상하고, 좋았던 모습들을 기억하는, 따뜻하고 정겨운 명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석을 맞아 예수님께서는 눈앞에 재물에 너무 지나치게 연연해하지 말고, 자주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 보라고 초대하십니다.

단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마음껏 먹고 마시다가, 바로 그날 밤 운명을 달리하게 될 부자 이야기를 예로 드십니다.

부자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로지 세상의 제물 축척하기 뿐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조만간 닥쳐올 노화, 죽음, 영적인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없이 살아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스타일의 삶을 추구하는 부자에게 어리석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부자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일 년 열두 달, 하루 온종일, 게으름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 결과가 엄청난 부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재물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모았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웃들의 곤궁함을 외면했습니다. 넘쳐나는 재화를 가난한 이웃들과 나눌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습니다. 세상의 재물에 눈이 멀어 영적인 눈, 지혜의 눈이 감겨 버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꽤나 평범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자주 잊고 삽니다. 어떤 사람들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이 자신만만하고 위풍당당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고도 없이, 우리 측의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처럼 홀연히 나타나셔서 우리를 데려가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나친 탐욕은 사람들을 갈라지게 하고 사랑은 사람들을 하나 되게 만듭니다.”(아우구스티누스 교부)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지상의 유산이 아니라 불멸의 유산입니다. 덕행만이 죽은 사람의 동반자입니다. 자비만이 죽은 사람을 따라갑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을 하늘나라의 거처로 인도합니다.”(암부로시우스 교부)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