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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러분의 죄를 사해주십사고 하느님께 손을 뻗으십시오. 손을 내밀어 뻗으면 고침받습니다!

9월9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유다인들은 그야말로 철두철미하게, 글자 한자 한자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율법, 특히 안식일법을 준수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고 자부심을 지니는 안식일 법규는 주로 ‘~하라!’가 아니라 ‘~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나열되고 있습니다.

안식일 법에 따르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39가지 세칙들을 제시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습니다.

‘장로들의 전승’에 따르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대표적인 노동 행위는 탈곡 작업이었습니다. 또한 응급환자가 아니고서는 병자에 대한 치료 행위도 엄하게 금지되고 있었습니다. 아파도 안식일을 피해 아파야 하니, 참으로 야박하고 비인간적인 안식일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혜성처럼 나타난 민족의 영도자,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기회 닿을 때마다, 자신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안식일 법을 보란듯이 침해하고 파기하니, 유다인들의 느꼈던 좌절감과 분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자연스레 예수님을 못잡아 먹어 안달이 난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설교를 마치신 다음,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아니나다를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매의 눈으로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존경과 흠모의 시선이 아니라 여차하면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어떻게 하면 그분을 올가미에 옭아맬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며,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악한 마음을 즉시 파악하신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도자들, 율법 학자들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십니다. 그 말씀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골이 잔뜩 났지만, 말문이 막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댑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루카 복음 6장 8~9절)

이 흥미로운 장면에서는 새포도주이자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권위와 낡은 부대로서 형식과 허울만 남은 율법의 준수가 대결구도를 이룹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판정승이 아니라, 1라운드 KO승을 거두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감하게도 낡고 고리타분한 과거의 안식일 법을 과감히 파기하십니다. 대신 인간성 회복을 위한 새로운 안식일 법을 제시하십니다. 허술하고 약점 많은 과거의 안식일 법을 보완하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원래 유다인들에게 안식일은 손가락 하나 꼼짝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안식일은 쉬는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업적과 자비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선행을 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축제의 날이고 잔치를 벌이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안식일의 의미가 아주 소극적인 형태로 희석되고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안식일은 생명을 누리는 날, 자신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한 주간 동안 행한 일에 기뻐하는 날, 사랑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날입니다. 이런 안식일에 고통받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는 더 없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손을 뻗어라.’ 성한 손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 손이 탐욕과 불경으로 오그라들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자주 손을 뻗으십시오.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뻗으십시오.이웃을 돕고, 과부를 보호하고, 불의하게 모욕당하는 이가 해를 입지 않도록 빼내주기 위해 손을 뻗으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사해주십사고 하느님께 손을 뻗으십시오. 손을 내밀어 뻗으면 고침받습니다. 예로보암은 우상을 숭배했다가 손이 굳었지만, 하느님께 간청하자 다시 펴졌습니다.”(암부로시우스 교부)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