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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결국 ‘내 생각만 옳다! 내 방식이 최고다! 우리가 제일 앞서 있다!’는 우월의식, 선민의식이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9월6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옥중서간(獄中書簡)!
듣기만 들어도 가슴이 싸하게 아려오고, 코끝이 찡해지는 표현입니다.

오래 전 함께 살았던 문제아들 가운데, 이제는 성인이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이 잘 안 풀린 친구들이 가끔씩 저에게 옥중서간을 보내줍니다. 요즘 보기 드문 손편지입니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꾹꾹 눌러썼습니다. 달필 중에 달필입니다. 교도소 안에 문예반도 있는지, 내용도 수준이 상당합니다. 자신의 지난 부족했던 삶에 대한 회한과 앞으로 남은 인생에 대한 굳은 결심과 각오가 생생하게 느껴지며 큰 감동을 줍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옥중서한을 쓰셨습니다. 대체로 에페소서, 필립피서, 필레몬서, 콜로새서, 이 네 개의 편지를 옥중서한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만, 정말로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쓰셨을까? 하는 친저성(親著性) 논란이 있지만, 옥중서한 한 편 한 편은 참으로 매력적인 편지들입니다.

모든 것이 제한된 깊은 감옥에서의 큰 고통 속에서도, 담장 너머 그리스도 신자들 신앙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격려하고 고무하는 교회 지도자의 모습들에서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옥중서한이라고 분류하고 추정하는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안에 수인이 된 나 바오로는 권고합니다.”(에페소서 4장 1절)
“내가 갇혀 있는 것이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사실이 온 부대와 그 밖의 모든 이들에게도 분명히 알려졌으며…”(필리피서 1장 13절)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갇혀 있는 나 바오로와 교우 디모테오가 우리의 사랑하는 협력자 필레몬 그대와…”(필레몬서 1장 1절)
“여러분은 갇혀 있는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콜로새서 4장 18절)

콜로새는 소아시아 지역 리쿠스 계곡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에서 30킬로 이상 떨어져 있는 오지였기에, 긴요한 용무가 없는 한,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쳐갔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콜로새를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오지 콜로새에도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리스도교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오지인데다, 에페소 교회와도 꽤 거리가 있었던만큼, 이 교회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앙과 삶에 약간의 고립과 문제가 있었습니다.

초기 콜로새 교회가 안고 있던 문제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단적 요소였습니다. 아무래도 초기 교회다보니 그리스도교 신앙과 유다교 신앙, 그리스 철학이 뒤죽박죽된 일종의 종교 혼합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단을 선포하는 지도자들의 가르침 중에 크게 그릇된 것은 자기들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자신들은 다른 지역 그리스도교 교회 신자들보다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을 훨씬 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결국 ‘내 생각만 옳다! 내 방식이 최고다! 우리가 제일 앞서 있다!’는 우월의식, 선민의식이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더 큰 위험성은 그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배척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콜로새 교회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단적 교의, 특히 종교 혼합주의, 그리고 그릇된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 주변에서도 많은 이단들과 이단적 가르침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 안에서도 백성들을 큰 혼란 속으로 몰고 가는 그릇된 가르침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의 균형 잡힌 가르침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입니다.
방황하는 백성들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제공하는 것, 많이 배우고, 많이 연구하고, 많이 기도한 사람들에게 지워지는 중요한 책무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콜로새서 구절은 ‘그리스도 찬가’라고 불립니다. 우주의 창조주이자 우주 구원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장엄하게 찬미하고 기리는 노래입니다. 그리스도 찬가에서는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 ‘모든 피조물의 맏이’로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전체 자연 질서 위에 계신 분이시며, 만물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음을 선언합니다. ‘온갖 충만함’은 하느님의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완전성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 장엄한 찬가는 역사 속 인물인 나자렛 예수님을 하느님의 육화하신 아드님으로 선포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