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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멸의 가치

8월29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참으로 이해 안가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아닐까요? 아직 갈 길이 구만리 같은 한 청춘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

때로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이 세상에서 불필요한 것들만 소멸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세례자 요한이 그랬습니다. 그는 당대 모든 사람들로부터 기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대예언자였습니다.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느님의 뜻을 성취해나가던 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 세례자 요한이었는데, 참으로 안타깝고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너무나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황당한 죽음을 급작스럽게 맞이합니다.

이 세상에서 불필요한 것들, 무가치한 것들만 소멸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자연의 이치요 우리네 인생인가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더욱 특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습관처럼 만나는 인연들이 더욱 소중합니다.

마치 파리 목숨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세례자 요한의 짧았던 생애 앞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크겠지만, 그의 죽음에서 반드시 우리는 하나의 의미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우리네 운명이란 것은 사람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모든 삶의 국면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줄 아는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고, 이렇게 자신감 지니고 살아가지만 내일 우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단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 그분의 손길에 달려있습니다.

강물이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유유히 흘러가듯, 중력이 위에서 밑으로 작용하듯, 우리네 삶도 물 흐르듯이 흘러가게 놔둘 일입니다.

떨어질 순간이 오면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밑으로 내려갈 순간이 오면 너무나도 당연히 내려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아쉽지만 모든 것 내려놓게 그분께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아직 우리가 이 땅위에 두발을 딛고 서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아직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 기꺼이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아닐까요?

고통의 순간이 다가오면 있는 그대로 견뎌내고, 주어지는 모든 것에 만족하며, 작은 인연조차 소중히 여기며, 절박한 순간조차 유머감각을 잃지 말며, 최악의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는…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