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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느님의 계산법은 인간의 계산법과 철저하게 다릅니다. 그저 감사하면서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야겠습니다!

8월21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언젠가 한 피정에서 명예나 청춘, 재물이며 목숨까지 다 주님께 봉헌하며 살아오신 분, 평생을 뒤돌아보지 않고, 달릴 곳을 다 달려오신 분께서 제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신부님 강의 중에 <우리가 만일 구원된다면, 우리가 그간 쌓아온 선행이나 업적보다는, 우리 인간 측의 죄와 나약함, 그리고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우리를 향한 측은지심으로 구원될 것입니다.> 라고 하신 말씀 들으며, 조금은 혼란이 오고, 또 많이 서운했습니다.

그렇다면 작지만 그간 제가 평생토록 목숨바쳐 실천해온 이웃 사랑의 실천은 별것도 아니네요.
아무 소용도 없네요.”

뜨끔해진 저는 부랴부랴 해명을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게 아니고요!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인간 측의 노력도 아주 중요합니다.
죄와 악습을 멀리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는 노력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이 더 우세하다는 것이지요.
그간 쌓아오신 여러가지 공덕을 보시고 그분께서 아주 기뻐하시고, 크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저는 열심히 이런 저런 격려의 말씀 드렸지만 무척이나 궁색한 답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 역시 조심해서 접근해야 하고, 심오한 가르침의 배경에 대해서 잘 새겨 들어야겠습니다.

오전 9시에 포도밭에 도착해서 저녁 6시까지 열심히 포도밭에서 일한 일꾼들은 일당을 지급하는 주인의 처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전부터 하루 온 종일 뙤약볕에서, 그야말로 뼈빠지게 일한 일꾼은, 오후 5시에 도착해서 한 시간만 일한 일꾼들이 빳빳한 오만원 짜리 신권을 한 장 받는 것을 보고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이 오만원 받았으니, 가만히 있어보자, 9시간동안 일한 우리는 45만원을 받겠구나. 갑자기 이게 웬 떡이냐!’

그러나 웬걸! 주인이 건네는 일당 봉투를 조심스레 열어보니,에게게! 한 시간 일한 사람과 똑같은 5만원 짜리 딸랑 한 장이었습니다.
화가 벼락같이 난 그들은 크게 투덜거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 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마태오 복음 20장 11절)

초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위와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신앙을 고백한 직제자들, 그리고 오랜 세월 충실히 그분을 섬겨온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뒤늦게 공동체에 편입된 사람들, 우상을 섬기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바라보며, 나름 우월의식이랄까 특권의식을 조금 지니고 있었겠지요.

“우리는 너희들과 격이 다르다. 우리는 직제자들이다. 우리는 원조 멤버들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상급도 당연히 차등 지급될 것이다.”

그들은 쓸데없는 우월감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새로운 신자들에게 텃세도 많이 부렸겠지요.
종말에도 당연히 뒤늦게 공동체에 가입된 사람들이나 이방인들과는 확연하게 차이나는,
급이 다른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와 교회 안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이나 신앙의 선배들은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찬 새로운 멤버들을 활짝 팔을 벌려,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단체 안에서 선배라는 이름으로 보잘 것 없는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나 걱정됩니다.
이런 상황을 미리 내다보신 예수님께서 아주 강한 어조의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삮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오 복음 20장 13~15절)

하느님의 계산법은 인간의 계산법과 철저하게 다릅니다.
크신 하느님의 생각을 인간의 머리로 헤아리기가 벅찹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칩니다.
그저 감사하면서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야겠습니다.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느님은 인간 측의 공덕에 비례해서 보상하시기도 하지만, 공덕과 상관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바리사이들의 생각과 완전 다릅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공부한 사람,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만 구원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리나 창녀, 죄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신앙생활의 길고 짧음에 상관하지 않고, 만백성들을 향해 세세대대로 베풀어집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