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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3년 여간 보람되고 활기찬 공생활을 마치신 예수님 앞에 남아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높디높은 예루살렘의 언덕길,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골고타 언덕길을 올라가는 일이었습니다. 머지않아 몸소 치러내야 할 그 마지막 통과의례-체포와 수난과 십자가 죽음-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똑똑히 인지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피할 수 있는 잔이라면 치워달라고’고까지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길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두말 않고 묵묵히 예루살렘을 향해 발길을 옮기십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니 예수님의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본격적인 수난의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적대자들 앞에 홀로 서 계십니다. 율법이라는 덫을 사용해서 야금야금 예수님을 죽음의 올가미 안으로 몰아가고 있는 율법학자들, 사사건건 트집 잡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바리사이들, 이 모든 일들은 뒤에서 조종하고 있던 대사제들, 유다 최고의회…이미 예수님의 미래는 불을 보듯이 뻔했습니다. 모든 정황을 정확히 꿰뚫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제자들에게 앞으로 전개될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서 되풀이해서 설명해주십니다. 이번이 벌써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입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거듭된 수난 예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제자는 뭔가 감을 조금 잡기는 했지만 수난 예고를 의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던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은 환영했지만 수난과 죽음을 치러내야만 하는 예수님은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은 현세에 실현될 이 세상에서의 메시아 왕국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은근히 청합니다. 혹시 다른 제자들이 먼저 청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이렇게 청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차지도 않았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보십시오. 두 사람이 간절히 바랐던 바는 현세적 영광과 권력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건설하실 새 나라에서 재상이나 총리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신 새 하늘 새 땅, 새로운 왕국은 절대로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추구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생활 역시 절대로 현세적인 것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상의 논리, 폭력,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삶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평화와 일치가 공동체 생활의 원리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