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자비와 은총에 힘입지 않고서는
<하느님 자비와 은총에 힘입지 않고서는>
바리사이의 신앙,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지 하늘을 우러러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 년에 한두 번 단식했는데,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단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일조를 철저하게도 바쳤습니다. 십일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수입의 10분의 1을 바쳐야 됩니다. 그는 월수입 500만원 가운데 50만원을 매달 빠지지 않고 봉헌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두고 보더라도 그는 놀랍고도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신앙인에게 딱 한 가지 흠이 하나 있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왔고, 많은 것을 하느님께 봉헌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에 대한 지나친 우월의식, 지나친 자신감, 스스로를 들어 높이는 교만한 마음이 그동안 애써 쌓아올린 아름다운 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바리사이에게 부족했던 것 한 가지는 겸손의 덕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자신이 ‘무익한 종’이라는 의식보다 ‘유익한 종’이라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하느님께서 큰 자비와 은총을 베푸셔서 티끌 같은 자신을 축복하셨음을 까마득히 잊고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오늘 여기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하느님으로부터 무상으로 주어지는 ‘은총’이요 ‘자비’요 우리 인간을 향한 ‘측은지심’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해 보잘 것 없는 우리가 희망을 간직한 빛나는 얼굴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 은총을 통한 의화(義化)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느님은 필요 없으며 결핍과 한계와 모순투성이의 인간인 자신에게만 의존하므로 그 길의 끝은 결국 멸망이요 죽음인 것입니다.
때로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 나, 우리, 인간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은 우리들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떵떵거리며 살아가지만 내일을 기약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힘입지 않고 스스로 완전해진다는 것, 스스로 거룩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은총의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힘입어 우리는 성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는 바로 세리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를 쓰고 노력하지만 변화무쌍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우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죄와 부족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하느님 자비를 구하면서, 그분의 은총에 호소하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절박한 처지를 있는 그대로 솔직히 하느님께 보여드리면서 그분의 일상적인 개입, 그분의 구체적인 현존을 청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