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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리스도인들의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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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의 욕심

야고보와 요한 사도의 어머니가 하고 있는 이 청탁, 예수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기적과 영광의 시기, 환호와 박수갈채의 순간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여행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 여행은 정녕 떠나기 싫은 예수살렘을 향한 여행길입니다. 생각만 해도 살이 떨리는 골고타 언덕을 향한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신 예정된 십자가의 길을 차근차근 밟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뇌는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도 지니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성도 지니셨습니다. 얼마나 괴로우셨겠습니까? 얼마나 힘드셨으면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까지 말씀하셨겠습니까?

이런 판국에 제자들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매사의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한 마음 한뜻이 되어 고뇌하시는 예수님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을 위로해드리면서 그분의 고통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이란?

너무나 한심해서 혀를 찰 노릇입니다. 뭐가 뭔지 분위기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 사도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 인사 청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본 다른 제자들은 불같은 질투심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길에서 한판 붙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제자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한 제자단의 현실입니다.

사실 야고보와 요한 사도의 어머니가 보여준 태도는 참을 만합니다. 뭔지도 모르는 개념 없는 어머니로서 두 아들에게 높은 자리를 챙겨주려는 모습,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야고보와 요한 사도가 보여준 모습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건설하실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철저하게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지상적 통치권의 실현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런 나라가 서게 될 때 No 2와 No 3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차라리 솔직하게 직접 예수님께 청했으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치사하게 뭔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중간에 내세워 청했습니다. 두 제자는 참으로 정치적이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아직 내면의 정화가, 성령의 불길을 통한 내적 회개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의 정신은 출세지상주의들의 정신과는 철저하게도 반대의 길을 추구합니다. 자기 혼자만의 영예, 물 좋은 자리만을 찾는 극단적 자기중심주의는 그리스도의 정신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권력이나 이권을 추구하는 사람은 교회와 그리스도를 망신시키는 사람입니다. 신앙이 한 개인의 정치적, 사적 야심을 실현시켜주는 도구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의 오른편에 자리 잡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고통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 주님의 왼쪽에 앉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쓴잔을 끝까지 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에게 야심이 있다면 그것은 이웃을 섬기기 위한 야심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욕심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과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겠다는 욕심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