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보시고 하느님께서
오늘 나를 보시고 하느님께서
필립보의 초대에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든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며 탐탁치않게 생각했지만, “와서 보시오.”라는 거듭된 초대에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처럼 완고하게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예수님을 향해 걸어갑니다. 나타나엘의 진리를 향한 개방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당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나타나엘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정말이지 평소 좀체 사용하지 않으셨던 극도의 칭찬을 건네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이런 예수님의 칭찬을 통해 우리는 나타나엘의 인간됨됨이, 그의 깊은 신앙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 그 어디를 봐도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대단한 칭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나타나엘을 다른 무엇에 앞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바처럼 그는 무화과나무 아래 서 있던 사람, 하느님의 그늘 아래 서 있던 사람, 하느님의 얼굴을 찾던 사람, 하느님 나라를 간절히 고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 속 깊은 생각은 물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던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대단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을 봐서 나타나엘은 신앙의 정도를 걷던 사람, 다른 이들의 이정표요 귀감인 사람, FM 신앙인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빈말을 하신다거나 없는 것을 애써 꾸며 말씀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탁월했던 모범생 신앙인이었던 나타나엘에게 예수님께서는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더 큰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토록 우리가 그리워하고 꿈꾸던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을 약속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하늘나라의 아름다움, 감미로움, 그곳에서의 평화로움, 잔잔함, 행복을 맛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를 보고 하느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지 무척이나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부터 우리도 또 다른 무화과나무 아래인 하느님의 성전 안에서, 우리 각자의 본당 안에서, 가정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느님의 얼굴을 찾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노력을 통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나타나엘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향한 지속적인 개방성을 지니는 것,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는 일, 하느님의 집 안에 머무는 일,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일, 그 누가 뭐래도 충실하고도 당당하게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