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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도생활 못지않은 결혼생활

수도생활 못지않은 결혼생활

‘가정공동체’ ‘가정교회’에 대해서 강의할 때 마다 제가 단골로 써먹는 조금은 썰렁하고, 고전적인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한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 때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300명은 족히 될 남녀교우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기 계시는 자매님들 가운데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을 내 남편으로 선택하겠다는 분 손들어보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적어도 몇 명을 손들겠지, 생각하셨는데, 200여명이나 되는 자매님들 가운데 단 한명도 손을 들지 않으셨습니다. 난감해진 신부님은 당부조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옆에 사람 눈치 보지 마시고 소신 것 손 한번 들어보세요.”

그때 다행히 손을 번쩍 드신 자매님이 한 분 계셨는데, 연세가 80 중반 정도 되시는 자매님이셨습니다. 그렇게 부부금실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교우들에게 소개를 해주시라고 했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나는 젊어서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하고 쭉 혼자 살아오다가 나이 좀 들어서 재혼했는데, 살아보니 둘 다 별 것 없더라구. 그 ×이 그 ×이더라구. 그렇다면 또 다시 결혼한다면 낯선 ×보다는 익숙한 ×이 더 낫지 않겠수?”

그렇습니다. 할머님 대답이 정답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다른 가정은 다 깨가 쏟아지는 성가정처럼 보이지만 각 가정마다, 각 부부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나름의 한계와 부족함을 안고 한 평생 아옹다옹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 우리네 삶입니다.

지나친 기대가 실망을 초래합니다. 요즘 ‘아친남’(아내 친구 남편)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관리를 잘 해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어려 보여야 합니다. 그럴듯한 직장에 매일 출근하는 남자여야 하고, 자주 해외출장도 나가주는 남자여야 합니다. 출근하기 전에 아침식사를 근사하게 차려놓고 부드럽게 아내를 깨워주는 남자여야 합니다.

‘아친남’과 대응되는 말도 쉽게 만들 수 있네요. ‘남친아’(남편 친구 아내). 나이를 먹어도 늘 난초처럼 청초하고, 다소곳하고, 예의바르고, 항상 웃고, 거기다 돈까지 잘 벌어오고…

세상에 이런 남편, 이런 아내는 없습니다. 10명의 남편이나 아내가 지닌 단점들은 쏙 빼버리고 장점만을 모아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 모를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어쩔 수 없니 부족한 인간, 나약한 인간, 모순과 한계를 지닌 인간, 그러나 노력하는 한 측은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긴 여행길을 함께 걸어가며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가며, 서로 도와주고, 서로 성장시켜주며, 서로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이 바로 결혼인 것입니다.

수도생활 못지않게 많은 십자가와 큰 희생이 따르는 수행생활입니다. 모든 것이 나와 다른 ‘그’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나와 다름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그’에 대해 연구해야 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를 이해하고, ‘그’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