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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참사랑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참사랑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며칠 전 저희와 함께 동고동락하다가 사회로 나간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꼬마 때의 모습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얼마나 듬직하게 잘 자라줬는지 모릅니다. 몸매가 완전 ‘짐승남’입니다. 이 친구의 특징은 고마운 분들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릅니다. 

말을 들어봤더니 지난 2년간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더군요. 2교대 근무에, 주말 근무에 정말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돈도 좀 모았다고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제게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밖으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오늘 자기가 근사한 저녁 한 끼 사겠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또 아끼던 동생들을 챙기더군요. 누구누구도 같이 좀 나가면 안 되겠냐고, 그러자고. 저녁 먹는 내내 선배로서 동생들에게 나름대로의 인생경험을 살려 조언을 늘어놓더군요. 

‘절대로 당장 눈앞에 것만 보고 행동하지 말고 최대한 멀리 내다봐라. 우선 월급 조금 더 준다고 철새처럼 이리저리 함부로 옮겨 다니지 마라. 인간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직장 상사가 이야기하면 우선 마음에 안 들어도 알았다고 이야기하라.’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달라진 아이의 모습, 확 변화되고 성숙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 입에서는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이가 30, 40인데도 철없던 시절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부모에게 칭얼대고, 의존하고, 마냥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지요? 나이에 맞게 성숙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가장 어여삐 받으실 우리의 봉헌입니다. 우리가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것, 이기적인 신앙을 떨치고 보다 이타적인 신앙에로 나아가는 것, 유아기적인 신앙에서 성숙된 신앙에로 성장하는 것,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 죄에서 해방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역시 부단한 변모, 변화와 성장의 삶이었습니다. 나자렛의 청년 예수에서 구원자 그리스도로의 변화를 추구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부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럭비공 같은 성향, 다혈질적인 성격, 마음만 앞서는 나약함으로 인해 제자로서의 삶에 합당하지 못했고 굴곡이 심했습니다. 마침내 스승님을 3번이나 배신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처절하게 가슴을 치며 배신의 죄를 뉘우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크신 자비에 힘입어 다시금 회심을 하고 또 한 걸음 크게 나아갑니다. 그리도 드디어 진정한 수제자로 거듭납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칩니다. 영원한 수제자로 예수님과 함께 천국의 관리인이 되십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드라마틱한 성장이요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변화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는 원래 열렬한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대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러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낙마하게 됩니다. 사흘간의 바닥 체험 끝에 예수님을 체험합니다. 그 뒤로 바오로 사도의 삶을 180도 바뀌어 그리스도의 박해자에서 그리스도의 전파의 1등 공신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셀 수도 없이 많은 여행길에 오릅니다.

우리 안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참으로 어려워 보이고, 때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변화인 것이 사실이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보면, 죽기 살기로 덤벼들다보면 언젠가 우리 안에서도 점진적 성숙, 작은 변화의 길이 분명히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