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회개와 성찰은 나 자신부터 먼저!

6월 22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오래전 학생 수도자들을 양성 책임자로 살 때였습니다. 당시 공동체에는 신학교와 신학원에 다니던 젊은 형제들로 북적였습니다. 당시 젊은 형제들은 막 운전면허를 취득한 초보운전자들이었는데, 소년원이며 분류 심사원, 법원 등을 다니면서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과속, 신호 위반 등으로 딱지가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초보들이니 그러려니 했었는데, 한번은 일주일 사이에 세 장의 딱지가 날아왔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날을 잡아, 모두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했습니다.

“우리가 수도자로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니고, 이런 데다 과도한 지출을 한다는 것, 이게 말이 되는 것입니까? 제발 시간 넉넉하게 출발하고, 양보 운전, 방어 운전 잘하면서 앞으로 제발 딱지 안 날아오도록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공동체 분위기가 싸해졌겠지요. 다들 어색한 침묵 속에 저녁 식사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들 조심하겠지 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또 하나의 딱지가 날아왔습니다. 봉투를 뜯어보는 제 손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뜯어보니 과속에 신호 위반에 법칙금이 7만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또 이렇게 날아오는구나, 하는 마음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습니다. 범인이 도대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에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날짜와 시간, 장소를 확인해보니, 범인은? 바로 저였습니다.

황급히 수녀원 새벽 미사를 가던 중에 찍힌 것입니다. 저는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은밀히 은행에 가서 범칙금을 납부했습니다. 지난 시절 돌아보니, 그런 부끄러운 케이스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다 보니 그 시절,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이웃의 부족함이나 실수에는 가차 없는 잣대를 들이대지만, 내 부족이나 실수 앞에는 얼마나 관대한지 모릅니다.

참 인간이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반성하고 진단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과오와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질책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도 권리도 없습니다.

이웃을 저울질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마땅합니다. 회개와 성찰은 나 자신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날카로운 비판 전문가들은 이웃을 비판하기에 앞서 비판의 잣대를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웃의 결핍을 바라보고 필요한 조언을 건넬 때는 다른 무엇에 앞서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웃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요구해야 마땅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도 않고 파악하려고도 애쓰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려고 기를 씁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달라도 너무 다른 위선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도 치명적인 병을 지니고 있기에, 자기 한목숨 살리기도 힘든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