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나라는 그분의 힘,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건설됩니다!
6월 19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걱정의 바탕에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지 묵상해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마실 음료가 없으면 어쩌나? 내 편안한 안식처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내가 더 나이 들어가면서 병고가 찾아오면 어쩌지? 내가 지금 버티고 있는 무대에서 밀려나면 어쩌나?
결국 우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 그 가장 근저에는 나란 존재의 소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수시로 등장하는 하느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반드시 쌍으로 붙어 다니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항상 함께 하겠다!
정녕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세상 재물이 사라지는 것,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지상의 평화와 안녕이 붕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우리 영혼 구원과 관련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인간의 근심과 걱정,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건설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공포심이나 불안한 마음과 더불어 찾고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의 마음 안에는 이미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기에, 그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와 재물 자체를 단죄하거나 의식주의 필요성을 부인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분께서 제자들과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해 특별히 경고하시는 바는 목숨과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요 탐욕입니다.
매일의 안정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경제적 기반은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침입니다. 미래를 위한 재물의 축척도 어느 정도여야지, 너무 지나칠 때 인간은 재물의 노예가 되고, 언젠가 그 지나친 재물이 오히려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진정으로 추구할 보물은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나라요, 그분의 다스림입니다. 내일에 대한 지나친 근심 걱정을 모두 말끔히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나머지는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두 손에 우리들 인생을 몽땅 맡겨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자체 해결해 버리고자 기를 쓰면, 그분께서 활동하실 여지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