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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서든 주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3월 26일 [성주간 화요일]

 

제자들의 마음을 손금 들여다보듯이 환하게 꿰뚫고 있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당신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기며 배신할 것인지? 누가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할 것인지? 누가 당신 홀로 체포 당하실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놓을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만일 제가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었다면, 즉시 노발대발했을 것입니다. 급한 성격에 제자들을 총집합시켰을 것입니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제자들을 일렬로 쭉 세워놓고 일장 훈시를 했을 것입니다.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대며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며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 혹독한 배신감과 고독함, 그로 인한 극도의 산란함 속에서도 철저하게도 제자들의 배신을 함구하십니다. 결정적인 배신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제자들이 계속 캐물었지만, 끝끝내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그런 태도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쉽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데 있어서 각 개인의 자유의지를 철저하게 존중해주신다고.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고. 당신을 철저하게도 배신하고 죽음의 길을 가는 것조차 본인의 선택에 맡긴다고?

실수도 하고 방황도 하면서 변화되고 성장하는 존재가 인간이니, 스스로 잘못을 인식할 때 까지 기다려주시는 예수님이시니, 그런 배신의 기회조차도 제자들에게도 체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영원하신 하느님,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에 비해 우리 인간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지극히 가벼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제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기세였지만,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잇속과 안위만을 궁리합니다. 어제 금강석보다 더 굳은 신념으로 결심하였지만, 오늘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마는 나약한 존재가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너무나도 나약한 우리 인간 존재 곁으로 사탄의 강력하고도 집요한 유혹은 끝도 없이 계속됩니다. 우리의 취약함 부분을 거듭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어제의 대단한 결심을 오늘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제 당당한 주님의 제자였지만, 오늘은 배신의 참담함에 눈물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서든 주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비록 오늘 죄와 배신의 늪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할지라도, 다시 한번 고개를 주님께로 돌리며 그분의 크신 자비를 구하는 노력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