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3월 24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면을 한번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갈 때 타고 들어갈 동물을 선택하시는데, 엄청 웃깁니다.

이제 마지막인데, 이왕이면 좀 있어 보이게, 코끼리 정도는 타고 들어가시면 참 좋았을 텐데. 코끼리가 아니라면 키 큰 낙타나 멋진 백마 정도는 괜찮았을텐데…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선택하신 동물은 어린 나귀였습니다. 나귀는 말과에 속하지만 그 모습이 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왜소합니다.

생긴 것도 생뚱맞습니다. 어린 나귀! 창조주 하느님의 외아들이요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분께서 타시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힘과 권세와 능력긍 겸비한 초강력 세속 왕권을 학수고대했던 예루살렘 사람들의 그릇된 기대감에 ‘빅 엿’ 하나를 제대로 먹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그분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마음껏 발휘하셨습니다.

인류 전체의 구원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머릿속에 명료하게 자리 잡고 있던 의식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의 마음을 따뜻이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 사이로 내려가야 하고,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중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가시는 곳마다 백성을 웃음의 도가니, 그리고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사람들과 마주 앉아 소주잔을 주고받는 메시아, 한잔 술에 기분이 좋아져 죄인인 인간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는 메시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메시아, 우리와 마주 앉아 썰렁한 아재 개그를 연발하시는 메시아…

우리의 하느님은 이처럼 따뜻하고 친근한 분이십니다.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키작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키를 낮추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낯설어할까 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의 메시아이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