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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나쁜 죄였든지 상관없습니다. 어떠한 죄도 하느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습니다!

3월 21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머리에 재를 얹으며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던 재의 수요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순시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들 사순 판공 성사는 보셨나요? 사순시기와 대림시기, 적어도 두 번 고해성사를 보도록 강력히 초대하는 판공성사 문화는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만이 지닌 특별한 전통입니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시절, 사제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숨어지내던 교우들을 연 1~2회 정도 방문하여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집전했습니다. 이런 전통이 정착된 것이 판공 성사입니다.

판공성사 때는 각 교우 앞으로 판공성사표가 배부되는데, 이는 교우들의 성사 생활 실태를 파악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됩니다. 어떻게 성사를 강요할 수 있느냐며 불만을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법상 모든 교우들은 적어도 1년에 한 번 고해성사를 보게 되게 되어있는데, 따라서 판공성사만 빼먹지 않아도 고해성사와 관련된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족시키는 것이니, 참으로 바람직한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숙제나 의무로서의 판공성사가 아니라 기쁨과 축제로서의 판공성사가 되었으면 참 좋겠는데…그것이 참으로 여의치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마치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고해소 앞으로 나아갑니다. 매번 똑같은 죄를 짓고, 고백하고,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구심을 품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고해성사의 참된 의미와 참맛을 알게 해주는 책, 고해성사에 대한 가치와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고해성사의 일곱 가지 비밀’(비니 플린 저, 전경훈 역, 성바오로)

저자의 고해성사에 대한 은혜롭고 감미로운 체험들과 가르침을 듣고 있노라니, 빨리 고해성사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태양은 누구에게나 햇살을 비추어 빛과 열을 전합니다. 이같이 하느님은 늘 사랑하시고, 누구에게나 빛과 열을 전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하느님과 그분 사랑에서 우리 자신을 갈라놓을 때에도 하느님은 달라지지 않으십니다. 달라지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죄란 바로 그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죄는 나를 동굴 속으로 데려갑니다. 고해성사는 나를 동굴 밖으로 꺼내줍니다.”

“사제는 단지 사죄(赦罪)를 선언하기 위해 고해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영적 안내자, 스승, 교육자의 역할을 맡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풀려나고, 치유되고, 회복되고, 용서받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해소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네가 고해소에 갈 때면, 내가 그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나는 단지 사제에게 감추어져 있을 뿐, 네 영혼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바로 나다. 너는 내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사제는 가림막일 뿐이다. 내게 쓰임 받는 사제가 어떤 사제인지 따지지 마라. 고해성사 때 내게 하듯 네 영혼을 열어라. 그러면 나는 네 영혼을 내 빛으로 채울 것이다.”(파우스티나 성녀 일기)

“고해소에서 나올 때, 하느님의 현존이 나를 꿰뚫었고, 나는 하느님의 세 위격이 내 안에 머무심을 느꼈다. 아니, 알아차렸다.”(파우스티나 성녀 일기)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기억들이, 심지어 이미 고해성사를 받았음에도 계속 되돌아와 머릿속을 맴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죄가 정말로 용서받은 것인지 미심쩍어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죄는 분명히 용서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없어졌습니다!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나쁜 죄였든지 상관없습니다. 어떠한 죄도 하느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