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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더 큰 사랑을 실천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교회 건설!

3월 3일 [사순 제3주일]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성전 정화 작업을 묵상합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남의 말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둘러 표현하지 않으시고 단도직입적으로,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상거래는 하느님의 집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원래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이 상인들과 결탁하여 뒷돈을 챙기면서, 성전에서의 상거래를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은 급격히 훼손되고 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사제들과 사제 가문의 귀족들은 성전 경내에서 이루어지던 매매에서 큰 이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대사제는 유다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의 의장으로서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나름 확고한 위치와 권력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최고 의회는 사제 가문의 가족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일반 귀족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당대 나름 잘 나가던 사람들의 집합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당시 물 좋은 장소, 막대한 목돈이 오고 가던 장소였던 성전에서의 상거래와 뒷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놓을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잔뜩 돈독이 올라있던 그들이 최상의 수입원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깡그리 무시하고 모독하는 예수님의 모습에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으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더이상 예수님을 그냥 둘 수 없다고 작정하고 없앨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도 타락하고 부패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상거래가 아니라 새로운 영적 예배와 찬미가가 흘러넘치는 기도의 집으로 복원시키셨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 성전 정화 작업을 계속되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오늘 우리 성전이 상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장바닥 같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홀대받고, 음흉한 사람들의 주머니만 가득 채워주는 훼손된 교회의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 교회에 바라시는 바가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이 시대 우리는 어떻게 성전을 정화시켜야 할까 고민해봅니다.

우리끼리 만의 폐쇄적인 교회가 아니라 춥고 고달픈 세상 사람들을 향해 활짝 열린 교회가 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전 정화 작업이 아닐까요?

한 사람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좌지우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인 참여와 구성원 상호 간에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성전 정화 작업이 아닐까요?

상상을 초월하는 건립기금으로 건립되는 성전이 아니라 방황하는 양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겸손하고 예의바른 사목자의 희생과 헌신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전을 건설하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요?

우리 시대 사회적 약자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도 크게 환영받고 아무런 차별도 느끼지 않는 환대의 교회,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따뜻이 보듬어줄 수 있는 치유의 공동체, 나만 혹은 우리 가족이나 우리 본당만 생각하지 않고 더 큰 사랑을 실천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교회 건설이 시급하지 않을까요?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