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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은 원대하게, 뜻은 크게, 그러나 시선은 언제나 발밑을 향해!

2월 25일 [사순 제2주일]

 

오늘 우리는 타볼산 정상에서 다시 한번, 인간적인, 아니 너무나 인간적인 수제자 베드로 사도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찰라같은 순간이었지만, 살짝 천국의 한 장면을 맛본 베드로 사도는 무아지경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외칩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비록 잠깐이지만 맛보고, 느끼고, 만끽한 천국 체험을 붙들고 싶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인 산밑의 세상으로 내려가지 않고, 여기 지금, 타볼산 위에서, 광채로 빛나는 인물들 사이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은 동료들과 함께 초막 셋을 짓겠다고 약속까지 합니다.

그러나 스승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잠깐이지만 맛본 천상 체험을 뒤로 하고, 다시 산 밑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잠깐동안의 천상을 체험한 사도들이었지만, 하산(下山)해보니, 무정하게도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피곤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고, 어제와 같은 인간 실존의 비참함은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아직 영광과 완성의 때가 도래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스승님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도래할 그 순간을 맞이하려면, 먼저 그분처럼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볼 산에서의 변모 사건을 통해 자신의 신원과 정체를 핵심 제자들에게 뚜렷히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외아들이시며, 머지 않아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시겠지만, 죽음에 머물러 있지 않으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것이며,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실 것이며 세세대대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형제들과 공동체 식사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식사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원장 신부님께서는 식사 후 기도를 하려고, 계속 분위기를 살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 식탁에서는 한 형제의 주도로 나라와 민족, 인류와 지구 온난화 등을 주제로 한 범국가적, 범세계적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원장 신부님은 이런 말로 대화를 종료시켰습니다. “자, 그럼 나라는 나중에 구하고, 우선 마침 기도부터 바칩시다.”

그렇습니다. 이상은 원대하게, 뜻은 크게 품어야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늘 우리의 발밑을 향해야겠습니다. 매일의 귀찮고 짜증나는 일상사 안에 하느님께서 굳게 현존하고 계십니다. 부족하고 죄투성이인 우리 공동체 안에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거룩한 산 위에만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귀찮겠지만 또다시 산 밑으로 내려가야겠습니다. 형편이 좋든지 나쁘든지, 내려가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야겠습니다.

조금 전에 맛본 감미로운 천상 체험을 이웃들에게 나눠야겠습니다. 저 아래로 내려가서, 복음 때문에 고생하고 박해받으며, 멸시당하고 배척당하면서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