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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원수 사랑이 실현되는 곳에 놀라운 기적과 은총이 뒤따를 것입니다!

2월 24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원수(怨讐)란 말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원수란 한 마디로 적(敵)을 의미합니다. 내게 치명적인 손해를 끼쳐 사무치는 원한을 맺히게 한 사람입니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생각해보니 이런 사람들도 원수에 포함시킬 수 있겠습니다. 내게 깊은 상처를 준 사람, 견딜 수 없는 수모를 준 사람, 그래서 대면하기 껄끄러운 사람, 같은 식탁에 앉아 밥 먹기 싫은 사람, 자다가도 얼굴을 떠올리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게 만드는 그 사람, 내 인생에 매운 고춧가루를 뿌린 사람, 틈만 나면 내 인생길을 가로막는 사람…

결국 원수는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 살아가는 존재들이군요. 원수는 어느 다른 하늘 아래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내 가정 안에, 내 직장 안에, 내 공동체 안에,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버젓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비하신 주님께서 바로 그 ‘원수’를 사랑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상종하기 싫은 사람이라고 안면 몰수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만 사랑하지 말고 꼴 보기 싫은 그 인간도 사랑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예수님의 당부 말씀을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해도 해도 너무한 요구를 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건 뭐 속도 밸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 아닌가요? 그저 바보 멍청이처럼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정말이지 인간의 힘,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듯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아무나 실천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나를 탈피할 때, 나라는 질그릇 안에 들어있는 과거의 자아를 완전히 비워낼 때 실천 가능한 가르침입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하느님화될 때, 인간적 관점을 버리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참으로 나약하고 부족하며 죄인인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자취’가 남아있고 ‘하느님의 인호’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비참하지만, 하느님께서 위대하시기에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인간의 비루함과 옹색함을 벗어나 광활한 사랑의 평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원수조차 사랑할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진짜 원수는 사람이 아니라 죄와 사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늘 우리 곁은 졸졸 따라다니는 평생 웬수 같은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한 세상 열심히 살아가다보니 어느 순간 그 ‘웬수’가 다르게 보일 때가 있더군요. 그 순간은 그의 내면에 아로새겨진 깊은 상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앞에서는 있어 보이려고 기를 쓰는 그의 쓸쓸하고 허전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입니다. 그의 말못할 사정을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뒤돌아서서 흘리는 그의 눈물을 바라보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나도 나약한 한 인간이지만 그도 나약한 한 인간이로구나, 그때 내게 준 괴로움이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이었구나, 좀 더 사랑해달라는 손짓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더군요.

원수에 대한 사랑, 참으로 어려워 보이는 일이지만 그 사랑이 실현되는 곳에 놀라운 기적과 은총이 뒤따를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