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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낄끼빠빠, 낄 데 끼고 빠질 때 잘 빠집시다!

2월 12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우르르 몰려다니던 젊은 시절, 다들 없이 살던 때였습니다. 식사나 술을 한잔 하고 나면, 서로의 얇은 지갑 상황을 고려해서, 십시일반 거두어 함께 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계산하는 순간, 귀신처럼 사라지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 아픈가? 무슨 사고라도 났나? 하고 걱정들이 많았는데, 상습범이 되고 나니 나중에는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낄 때 껴야 하는데, 꼭 빠지는 전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살아온 나날을 뒤돌아보니 끔찍할 정도로 햇수가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병원이나 면사무소나 우체국에 가면, 아버님이라는 소리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저희 가문 안에서도 부모님 떠나시고, 형이 떠나고 나니, 이제 저는 가계도 최상위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몇 가지 결심을 세우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른바 낄끼빠빠입니다. 나이와 위치에 걸맞게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지자는 것입니다. 반드시 끼어야 하는 순간은 어떤 때이며, 반드시 빠져야 할 순간은 어떤 때인지 늘 헤아려 가며 처신을 잘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게 될 때 노년의 삶은 추하고 비루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요즘 얼마나 자주 그런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른바 낄빠빠낄입니다. 끼어야 할 때는 빠집니다. 그러나 빠져야 할 때 반드시 끼어서 손가락질 받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대자연의 순환 논리를 자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노년기는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건너가는 시기입니다. 시들고 쇠락하고 소멸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결국 내려놓는 시기요, 사라지고 죽어가는 시기, 그러나 반대로 불멸의 희망을 지니는 시기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처신이 참으로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시비를 걸었습니다. 논쟁을 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해보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자신의 전지전능하심과 능력의 손길을 절대 허투루 사용하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기적을 행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사이들의 미성숙하고 유치한 태도에 마음 깊이 탄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 말씀을 뒤로 하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버리두신 채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빠져야 할 때 잘 빠지신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엉뚱하고 몰상식한 바리사이들의 언행 앞에 크게 분노하며, 단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논쟁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언성이 높아지고, 소리 소리 지르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논쟁할 가치조차 없는 바리사이들과의 대화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확신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신속히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떠나신 것입니다. 이른바 생활 속 거리두기, 관계 안에 완충 지대를 만드신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우신 예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낄끼빠빠를 잘 하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일, 아닌 주제로 목숨걸고, 피 튀기며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로 인해 그 좋던 관계 다 산산조각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