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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가 고통을 잘 참아 견딜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게 됩니다!

2월 11일 [연중 제6주일(세계 병자의 날)]

 

오늘 세계 병자의 날인 동시에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그러나 주일과 겹치는 관계로 전례 우선순위에 밀려 오늘은 기념없음으로 표시됩니다.

돌아보니 저도 이런저런 병고에 참 많이 시달렸습니다. 특히 30여 년 전에는 상태가 심각해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은혜롭게도 그때 마침 루르드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원래 제가 갈 상황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루르드에 딱 도착했는데, 당시 1월 초순이었는데, 아직도 그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기억에 생생합니다. 동굴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테트의 생가를 방문하고, 사흘 내내, 묵주기도와 함께 루르드를 산책하였습니다.

루르드에 머무는 동안 한 가지 따뜻한 느낌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성모님께서 평생토록, 사시사철, 시시각각으로 제 인생 여정에 동반하고 계셨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 병고로 인해 제 내면에 고착화되어 있던 근심 걱정과 불안한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모님께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저를 꼭 안아주신다는 느낌이 참 행복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잘 왔다. 내 아들아! 그간 얼마나 고생 많았느냐? 아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 아들 예수님께서 잘 알아서 해주실 것이다.”

오늘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병자들의 위로요 안식처인 성모님께서 병고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극복 가능한 질병은 치유시켜주시기를 청해야겠습니다. 병자들이 자신에게 다가온 병고를 통해 주님의 고통과 수난에 더 깊이 참여하며, 더 영적으로 변화되길 더불어 청해야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니고 있는 병고에 대한 오해과 편견도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과거에는 병에 대한 오해가 참 많았습니다. 유다 문화 안에서도 나병은 천형으로 여겼습니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했기에 그 벌로 인한 병이라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병고와 맞서느라 죽을 지경인데, 당시 환자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손가락질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오늘 우리 안에서 병고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 조용히 기도해 드리고, 투병을 위한 도움을 드리기보다는 다들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그렇게 절친하게 지냈던 관계인데도, 병문안 한번 가지 않습니다.

“그 소식 들었어? 누구누구가 말기암이래? 그렇게 퍼마시더니, 그때부터 내가 알아 봤어.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인데, 처자식들은 어짠댜?”

병이라는 것은 결코 죄에 대한 벌이 아닙니다. 무조건 적대시하고 원망해서도 안됩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까칠한 손님 같은 존재입니다. 잘 다스리고 보살피며 극복해나가야 할 대상입니다.

병고를 통해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병고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고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허물어지기 쉬운 존재임을 알게 되고, 영원한 보루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많은 환자들께서 품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투병 생활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투병하느라 돈이란 돈은 다 까먹고,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고…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고통을 잘 참아 견딜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꺼이 우리의 병과 맞설 때,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모든 환자 여러분들, 여러분의 삶에 분명히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뿐만아니라 환자 여러분도 병실 안에서, 병과 함께 훌륭한 사도직에 참여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