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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묘지 앞에서

2월 10일 [설]

 

한 형제와 작별하러 공원묘지에 갔을 때입니다. 하관 작업과 추모를 마치고 시간이 좀 있길래 묘원 사이를 거닐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거기 누워계시는 한분 한분을 위해 기도해드렸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과 세례명, 생몰연대를 쭉 읽어나가는데, 100년도 훨씬 전인 1900년대 초반에 돌아가신 분이 있는가 하면, 불과 사흘 전에 묻힌 분도 계셨습니다. 백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분이 있는가 하면 꽃다운 20대 초반 나이에 돌아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개인적으로 은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짧은 하루 피정 같았습니다.

공동묘지는 우리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생명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 존재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설날을 맞아 교회 전례 독서는 우리를 죽음에 대한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먼저 떠난 이들의 죽음을 헤아려보며, 우리의 근원, 우리의 처지, 우리의 목숨이 대체 무엇인지도 성찰케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생명과 목숨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 목숨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이런 우리에게 야고보서는 얄짤 없습니다.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기대수명을 너무 길게 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만해도 기대수명이 84세인데, 처음에는 한국인 평균은 되는구나 했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왜 94가 아니고 84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의 큰 착각은 우리가 아주 길게, 영원히, 적어도 백 살은 살겠지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루카 복음 사가 역시 칼같이 짜릅니다.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