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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의 큰 착각 한 가지는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사탄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

8월 17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유다인이면서도 탁월한 철학자요, 그리스도교 안에서 깊은 경지에 도달한 신앙이었던 시몬느 베이유의 자성과 성찰이 참으로 크게 와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착각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탄의 존재를 외부의 그 어떤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사탄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비유 말씀 역시 그런 오늘 우리의 무지와 무감각을 신랄하게 질타하는 말씀입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 32-33)

자신의 눈 안에 들어 있는 엄청난 크기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동료 인간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은 현미경의 시선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오늘 우리의 이율배반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종이 탕감받은 액수는 사실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만 탈렌트! 우리 같은 평민은 평생토록 접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이었습니다.

어떤 연유에선지 모르지만, 그 종은 임금에게 만 탈렌트의 빚을 졌습니다. 아파트 수십 채 값이니, 죽었다 깨어나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사정이 그렇게 되니 종은 바짝 자신을 낮춥니다. 바닥에 엎드려 싹싹 빌면서 외쳤습니다.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그 모습에 임금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의 태도를 보십시오. 화장실 들어가기 전하고 나오고 나서의 얼굴처럼,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합니다.

그토록 큰 은혜를 입었으면, 사람이 바뀔 만도 합니다. 너무나 기뻐 펄쩍펄쩍 뛴다든지,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앞으로 어떻게든 잘 살아야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자비를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태도겠습니다.

그런데 탕감받은 종을 보십시오. 임금으로부터 물러나자마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습니다. 일만 탈렌트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습니다.

그는 마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식으로 그를 대합니다.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당장 내놓으라고 합니다. 당장 없다고 하자,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 안에 종의 모습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온 제 인생 돌아보니, 극진한 하느님 자비가 무한 반복되어온 인생이었습니다. 그토록 거듭된 큰 죄, 해도 해도 너무한 부끄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한결같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또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이웃을 밥 먹듯이 용서해주고, 또다시 기회를 주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