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때, 꼭 유념해야 할 사항 한 가지
5월 20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최근 우리가 계속 봉독한 요한복음 내용은 예수님의 고별사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고별사는 절정을 향해 나아갑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복음 16장 23~24절)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표현 중에 ‘진실로 진실로’란 표현이 있습니다. 100 퍼센트 확실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100 퍼센트, 꼭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때, 꼭 유념해야 할 사항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 내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아무 것이나 죄다 청해도 들어주신다는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때, 허무맹랑한 청원, 황당무계한 청원, 낯부끄러운 청원, 유아기적 청원은 해서 안 될 것입니다. 청원 기도에도 식별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들의 청원 기도에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개입되기 십상입니다.
유한한 우리들의 불사불멸을 청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의 작은 노력은 뒷전인 채, 순식간에 모든 것이 뒤바뀌는 동화 같은 인생의 반전을 청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인간 측의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느님 아버지께만 공을 넘겨 드려서도 안되겠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나 자신의 인생과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청해야겠습니다. 결국 우리의 청원기도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드린 기도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가 원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을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을 것인가에 대해 신경을 좀 껐으면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기도 중에 하느님 아버지와 나 사이에 오고 가는 깊이 있는 영적 친교에 더 큰 방점을 찍어야겠습니다.
기도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아버지, 그분 앞에 내가 앉아 있고, 그분께서 내 안에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바라보고 있고, 그분께서 사랑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왕이 자신이 아끼는 신하에게 “무엇이든 소원 한 가지를 말하라.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신하는 과연 어떤 것을 청할까요?
한 가지만 청하라 했으니 아무래도 심사숙고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 청할 것 정말 크게 한 가지 청할 것입니다. ‘현금으로 백만 원을 주세요.’ ‘땅 다섯 평만 주세요.’라고 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평생 먹고 정도의 돈인 ‘10억만 주세요.’ 아니면 ‘넉넉한 퇴직금이나 연금이 보장되는 장관 자리 하나 주세요.’ 라고 청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청입니다. 이왕이면 드리는 청, 보다 큰 청, 보다 중요한 청을 드려야겠습니다.
인간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할 작은 고통 하나, 눈 녹듯이 없애 달라고 청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청할 것입니까? 그 고통을 잘 극복할 힘을 청하고, 그 고통 안에 담긴 하느님의 큰 뜻을 이해할 능력을 청해야겠습니다.
다양한 한계와 약점 지닌 존재이기에 필연처럼 짊어져야 할 매일의 십자가 없애주시기를 청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청할 것입니까? 일상의 십자가 기꺼이 지고 갈 인내심을 청하고, 내 십자가 통해 주님의 십자가 묵상할 지혜를 주시라고 청해야겠습니다.
부초처럼, 뜬구름처럼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청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보다는 보다 영원한 것, 보다 가치 있는 것, 보다 불멸하는 것, 다시 말해서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 구원에 합당한 자격을 청해야겠습니다.
더불어 하느님의 성령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 한 가운데 성령께서 현존하시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갖가지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갈 힘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더 영적으로 변화되기를, 고통을 기쁘게 견뎌낼 용기를 주시기를, 불의하고 부당한 현실과 기꺼이 직면할 당당함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