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과 각별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그분의 종일 뿐입니다!
5월 4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만왕의 왕이요, 세상 만물의 창조주요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이요 종인 제자들 앞에서 허리를 굽히시고, 그들의 냄새 나는 발을 씻어주신 세족례 사건은 당대 사람들, 특히 유다 고위층 인사들에게는 엄청난 스캔들이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세족(洗足)은 종이나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지, 왕이나 고관대작들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앞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사실 공생활 기간 내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목이 아프도록 외치셨습니다. 너희는 부디 작고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제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본받지 마라.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의 진의를 마지막 순간까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 사도는 어머니까지 동원해서 높은 자리에 앉아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본 다른 제자들도 다들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아무리 외치고 부르짖어도 귀를 막아버린 제자들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 한 장을 쓰셨는데, 그것이 곧 세족례였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족례를 통해서 쓸데없는 교만함과 우월감, 자만심으로 가득 찬 유다 고위층 인사들, 그리고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제자들을 향해 일종의 극약처방이요 충격요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족례를 거행하고 나서 하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내기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요한 복음 13장 16절)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발 씻김을 받았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극진한 봉사와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의 신분이 올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과 선택, 각별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그분의 종이요, 도구일 따름입니다. 우리가 사제가 되고, 수도자가 되고, 주교가 되고, 추기경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원은 항상 그대로입니다. 주님의 작고 미천한 종일 뿐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