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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비춰져야 할 큰 빛입니다!

9월 19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상습 피로와 열두 서너 가지 고민꺼리들, 누적된 스트레스로 가득 했던 어느 날 새벽,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적합한 형용사를 떠올려보니 여러 가지였습니다. ‘게슴츠레’ ‘우중충’ ‘누리끼리’ ‘꼬질꼬질’ ‘흐리멍텅’…

부랴부랴 세면을 하고 한 수녀원 새벽 미사를 드리다가 한 A급 애기 수녀님의 얼굴을 봤는데, 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또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초롱초롱’, ‘샤방샤방’, ‘생기발랄’ ‘총기 충만’한 얼굴로 미사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하는지 잘 가르치고 계십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루카 복음 8장 16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등경 위에 놓인 등불 같은 삶이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짙은 암흑 속에 빛이 되어주는 사람, 심연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 끝도 없는 고통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 병고 속에서도 빛이 나는 사람…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 밝고 화사해야 마땅한데, 참으로 어둠이 짙습니다. 암담하고 팍팍합니다.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는 점점 줄어듭니다. 표정들은 마치 좀비들처럼 퀭하고 음산합니다. 순간순간 셀 수도 없이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사고들은 우리를 더욱 울적하게 만듭니다.

충만한 기쁨으로 빛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이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우리 봉헌생활자들이 빛나는 얼굴을 세상에 드러내야겠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렬한 생명의 광채를 반사하는 거울이어야겠습니다. 우리 각자 영혼의 등불에 성령의 심지로 불을 밝혀야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그분의 가르침으로 인해 어떤 소중한 깨달음이나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면, 그것은 나만 비밀스럽게 간직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꽁꽁 숨겨 둬서도 안됩니다. 그 소중한 은총을 동료 인간들, 그리고 세상과 나누고 공유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께서 선물로 주신 복음, 즉 구원의 기쁜 소식을 자신 안에 붙들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 만민 모두가 아무런 차별없이 골고루 혜택을 받도록 그분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해야 합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비밀리에 가르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당에서, 광장에서, 공개석상에서, 공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분 가르침의 진의(眞意)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이 종래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판이하게 신선했고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열두 사도들 가운데서도 최측근 제자들과 아주 소수의 특정인들만 그분의 말씀을 이해했고, 하늘나라의 신비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결코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복음은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보편적인 가르침입니다.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비춰져야 할 큰 빛입니다.

‘가톨릭’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의미는 ‘공번되다.’ ‘보편적이다.’ ‘두루두루 광범위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가톨릭교회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는 열린 교회입니다. 너그럽고 관대한 교회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우리끼리, 마음에 드는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비밀리에 운영되는 공동체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거나 파벌을 형성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 현존의 구체적인 표지가 되어야 하며, 예수님의 인류 구원 사업을 증거해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특별히 불림을 받은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자 자신들에게 큰 영예고 은총이지만, 그것을 자신들 안에 가둬두고 자신들의 영광으로만 돌린다면, 큰 죄악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값진 보물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은 인류를 위해 사용하라고 맡겨놓은 보물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깨달음은 공동체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등불 같은 존재여야 마땅합니다. 활활 타올라야 하고, 동료 인간들의 어두운 삶을 환히 비춰줘야 합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스승 예수님의 얼굴이 반영되어 있어야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