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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십자가는 그럴듯한 장신구나 장식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이며 매일 되풀이되는 삶 속의 십자가입니다!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현양(顯揚)이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름이나 지위 따위를 세상에 높이 드러냄’입니다.

결국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높이 쳐들어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를 사랑하고, 그 십자가를 통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축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에 경배하고,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돈보스코가 설립한 초창기 오라토리오 시절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어머니 맘마 마르가리타는 서른되 채 안된 나이에 세 아들을 부양하고 시어머니깢지 봉양해야만 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뼈 빠지게 일한 덕분에 세 자녀는 무럭무럭 장성했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연세도 들었겠다, 이제는 평생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순간이었습니다. 손주손녀들의 재롱도 즐기고, 자녀들의 효도를 받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는 어머니를 자신의 초창기 오라토리오로 초대했습니다. 어머니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의식주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또 다른 모진 세월이 시작된 것이지요.

초창기 오라토리오에 입소한 아이들은 결코 만만한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틈만 나면 훔쳐 도망가고, 쑥대밭을 만들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그러던 어느날 너무 힘들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던 어머니는 아들 돈보스코를 만나러 사무실로 찾아갑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드니 형 요셉의 집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돈보스코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무 말 없이 어머니에게 벽에 걸려있는 십자고상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시고는 다시금 개구쟁이 아이들에게로 돌아가셨습니다.

보십시오. 십자가는 그럴듯한 장신구나 장식품이 결코 아닙니다. 구체적인 현실이며 매일 되풀이되는 삶 속의 십자가입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지고 버릴 십자가가 아니라 평생토록, 하느님 품에 안기기 직전까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