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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오, 거두어가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9월 10일 [한가위]

 

또다시 추석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이 크신 분들도 많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친지들 가운데서 바이러스 여파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분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걸맞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관대한 나눔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또한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는 부자를 향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사실 재물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은 우리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하신 능력과 달란트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정직하고 깨끗하게 부(富)를 축척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봉사활동도 할 수 있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물에 대한 과도한 욕심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전 생애를 오직 재산 축척에만 몰두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전노처럼 돈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재물을 하느님의 위치에 올려놓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형태의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은 때로 마약과도 같아서 우리 인간의 오관 기능을 마비시키고 판단 능력을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결국 재물은 우리를 거룩함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해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속을 가장 잘 대표하는 재물이 우리 영혼에 끼치는 이런 악영향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재물을 지혜롭게 잘 사용할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준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복음 12장 20절)

따지고 보니 그렇습니다. 냉혹하지만 진리입니다.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오, 거두어가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축복도 주시지만 고통도 주십니다. 생명도 주시지만 죽음도 주십니다.

사실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우리의 생애는 덧없이 시들고, 우리는 무대 뒤로 사라져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때 우리가 모아두었던 재산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쌓아온 재물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과 세상, 하느님 나라를 위해 봉헌했던 나눔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소리 없는 나눔 그것은 하느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실 봉헌인 것입니다.

매일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재물에 죽고,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자존심에 죽고, 나만의 영역에 죽고, 내 울타리에 죽을 때, 우리의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잘 왔노라’ 하시며 우리를 환영하실 것입니다.

누구나가 다 고상한 죽음, 남 보기에 민망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합니다. 더 나아가서 고귀한 죽음, 향기로운 죽음, 이웃들의 뇌리에 강한 긍정적인 각인을 하는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그런 죽음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매일 부단히 죽는 사람들, 매일 자아 포기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 부단히 자기 혁신을 위한 아픔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