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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 독립의 소리가 들려 오면 천국에서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9월 7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고대하면서 책을 한 권 손에 들었습니다. 김훈 선생님의 하얼빈(문학동네)! 청년 안중근 토마스 의사님(1879~1910)의 거사와 순국(殉國)의 기획과 과정을 소상히 묘사한 흥미진진한 역사 소설입니다.

참담한 슬픔과 굴욕의 시기, 청년 애국자 안중근의 마음은 늘 찹찹했습니다. 처참히 짓밟히는 조선의 안타까운 현실 앞에 안중근은 기약 없는 떠남을 결심합니다. 황해도 진남포에서 신천으로, 신천에서의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배를 타고 함경북도 연추로, 연추에서 블라디보스콕으로, 그리고 마침내 하얼빈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 늘 미안했던 부인 김아려, 어머니 조마리아를 뒤로 하고 어딘지 모를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나가는 청년 안중근, 그 분위기는 참으로 처연했습니다. 아들이 품고 있는 큰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어머니 조마리아는 아들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마디만 하였습니다.

“거기는 춥다던데, 너는 한뎃잠을 좋아하니 견딜만 하겠구나. 네 처가 가엾게 되었구나. 성정이 고우면 속마음이 더 힘들다. 내가 잘 살필 터이니 그리 알아라.”

안중근은 신새벽에 길을 나섰습니다. 짐은 겨울옷 한 벌이 책 몇 권뿐이었습니다. 천주교 기도서도 보따리에 넣었습니다. 아내 김아려는 대문에서 남편과 작별했습니다. 이승에서 더 이상 남편과 해후할 수 없음을 직감한 아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직 대한 독립이라는 사명 하나를 가슴에 간직하고 어딘지도 모르는 물설고 낯선 머나먼 길을 떠나는 안중근의 뒷모습이, 한없이 나약하고 지조 없는 오늘 우리의 가슴을 치게 만듭니다.

마침내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은 동지 우덕순과 거사를 목전에 두고 하얼빈 시내로 나갔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그들 마음이 얼마나 결연하고 엄숙했던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옷을 사러 가자.”
“옷이라니?”
“지금 입은 옷은 추레하다.”
“돈이 모자랄 텐데.”
“넌 돈 걱정을 하지 마라.”
“왜 갑자기 옷이냐?”
“쏘러 갈 때 입자.”
“머리를 깎자. 잡힐 때 깔끔한 게 좋겠다.”
“그렇겠구나.”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중국과 러시아 접경 지역인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이 의거는 조선 통감으로 재직하면서 한일합방을 추진했던 가장 중요한 인물을 응징한 대사건이었습니다.

저격 30분이 지난 후 이토 히로부미는 6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고, 러시아 경찰대 숙직실에 구금된 상태로 있던 안중근은 그 소식을 전해 듣고는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사건 다음날 이완용은 이토 히로부미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뤼순으로 달려갔습니다. 뤼순에서 돌아온 그는 이토 히로부미 가족에게 위로금 10만원(현 시세 30억원)을 하사하라고 조선 정부를 압박했고, 순종은 마지못해 재가했습니다.

더없이 나약한 순종 임금은 자칭 천황 메이지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냈습니다.

“오늘 이토 공작이 하얼빈에서 흉악한 역도(逆道)에게 화를 당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통분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삼가 위로를 보냅니다.”

취조 때, 그리고 재판 과정 내내 안중근 의사는 더없이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였습니다.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사형 집행 며칠 전 안중근 의사는 동생들에게 눈물겨운 유언을 남겼습니다.

“독립 전에는 내 시신을 옮기지 마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들려 오면 천국에서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모국어를 빼앗기고, 존재의 이유마저 빼앗긴 나머지, 혈혈단신 춥고 배고픈 이국땅을 떠돌던 한그루 청청한 소나무 같던 안중근 의사, 그는 비록 이승에서 가난했고, 굶주렸고, 슬퍼 울었지만, 지금은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자비하신 하느님 품에 안겨계시리라 확신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