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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인생에 열정이 식어버리면 모든 것이 다 시들해집니다!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호사스럽게도 매일 저녁 황홀하고도 감동적인 일몰을 홀로 만끽하며, 김기석 시인의 ‘황홀한 일몰’이란 시에 크게 공감합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영혼입니다

홀로 지새우는 밤이 있음에눈부신 아침과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저녁

산다는 것은 이 얼마나 황홀한 몰락입니까

창을 열면 한줄기 바람되어목놓아 부르는 나의 노래, 황홀한 일몰

황홀한 일몰 하면 즉시 떠오르는 인물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멋진 인물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는 당대 다른 지도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하늘을 우러러 단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정도를 걸었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가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골수를 파고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철저하게도 일치시켰습니다. 어찌나 강직하고 당당하던지 그 어떤 권력이나 그 어떤 세력가 앞에서도 주눅 드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난관이나 권모술수를 내세운 협박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자 요한은 온 생애가 열정으로 가득 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열정에도 종류가 있더군요.

베네딕토 규칙서에 따르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선하고 이로운 열정이 있는가 하면 죽음으로 인도하는 모질고 사악한 열정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다른 열정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향한 열정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교활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헤로디아의 집요한 복수심 앞에서도 세례자 요한은 입을 다물지 않습니다. 의로움과 정의,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내면이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그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내던집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파워를 지니고 있는 위정자, 내 위치, 내 연봉, 내 미래를 송두리째 지니고 있는 CEO 앞에서 그의 인간적 약점, 무엇보다도 감추고 싶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적한다는 것,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세례자 요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자신 한 몸 희생해도 아무런 미련 없었던 세례자 요한,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한 줌 재가 되도 좋다고 백번 천 번 다짐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목숨까지 걸고 할 말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세례자 요한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참혹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그 죽음조차 두렵지 않습니다. 그 죽음이 너무나 어이없어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이었지만 이미 천도의 열기로 활활 타올랐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너무도 당당하게 그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신의 최후가 너무나 뜻밖이고 당혹스러운 것이 분명하지만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며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지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황홀하고도 장엄한 일몰을 그린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우리 삶에 ‘열정’이란 단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에 열정이 식어버리면 모든 것이 다 시들해집니다. 우리 내면에서 열정이 사라져버리면 우리는 순식간에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열정이 사라질 때 우리 한 평생도 고작해야 쓸모없는 시작과 무익한 종말 사이에서 소모되는 시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세례자 요한처럼 열정이 살아날 때, 아니 활활 타오를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인간으로 참 삶을 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따분한 생존의 연속이 될 것인가, 하느님 안에 하루하루 흥미진진한 충만한 날들이 될 것인가는 바로 이 열정 유무에 달려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