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베드로 사도의 사탄 전락 체험!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언젠가 세수를 하다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상습 피로에 잔뜩 찌든 탓도 있었겠지만,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한 울적한 얼굴이 영락없이 영혼 없는 좀비요, 사탄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천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자칫 방심하면 사탄의 삶으로 전락하고 마는 우리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복음 말미에서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오 복음 16장 23절)

우리도 이 세상 살아가면서 종종 베드로 사도의 ‘사탄 전락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여서 그렇습니다. 어제 그리도 굳건히 서 있었는데, 오늘 속절없이 무너져버립니다. 어제 살아있는 천사가 따로 없었는데, 오늘은 영락없는 마귀로 둔갑해있습니다. 어제 구름 위에 떠있는 것 같았는데, 오늘 제대로 된 바닥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솔직히 존경하는 스승님으로부터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소리, 결코 듣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리 베드로! 최고야, 에이스야, 넘버원이야!‘ 라는 소리 간절히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간절한 열망과는 달리 스승님으로부터 들려온 소리는 사탄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에서 사탄으로 전락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우리에게서 하느님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하느님의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직 인간의 생각, 인간의 일만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서 영적인 일,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관한 일, 더 큰 가치, 공동선을 위한 일이 모두 빠져나가고 그저 삼시 세끼 먹고 즐기는 일만 남게 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 밖의 현실과 철저히 단절된 상태로, 자기 한 몸 챙기기에 빠쁘게 될 때, 우리 역시 사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 봉사자들이 본래 종의 모습을 망각하고 사심으로 가득한 형국으로, ‘내가 원장이야, 내가 시설장이야’라고 외칠 때, 우리는 영락없는 사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예수님은 온데 간데 없고 내 얼굴만, 내 이름만, 내 명함만 크게 드러날 때, 우리는 또 다른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 새포도주이신 주님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노력, 새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 유연성과 탄력성을 거부한 채, 경직되고 고착화된 사고방식을 고수하려는 모습, 어쩌면 이 시대 또 다른 사탄의 모습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