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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말 근사하지 않습니까? 죽어도 죽지 않는 삶!

7월 29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정점(頂點)이라고 한다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사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지금 행하는 모든 신앙 행위나 신심 활동은 즉시 무의미해집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 삶도 즉시 빛을 바래며, 희망이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런 기대나 희망이 없는 삶, 얼마나 무의미하고 지루한 삶이겠습니까?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도 진정 살아있지 못한 삶, 사나 죽으나 그게 그것인 삶, 참으로 불행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물리치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심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고, 기대와 설렘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그분을 따라 부활할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불멸의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활 신앙의 부재와 결핍으로 인해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 잘 견뎌내면 또 다른 세상이 반드시 존재하는데, 힘겹겠지만 잘 극복하고 기다리다 보면 상상을 초월한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텐데, 그것을 못 기다립니다. 중도에서 포기하고 딴 길로 걸어가 버립니다.

부활하신 주님 덕분에 우리도 언젠가 죽겠지만, 결코 죽지 않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들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장 25절)

정말 근사하지 않습니까? 죽어도 죽지 않는 삶, 이번 생이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 이 세상 잘 견뎌내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상상을 초월하는 풍요롭고 충만한 또 다른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톨릭 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 교리이자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석인 부활 사건 앞에 별 감흥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 사건 앞에 밋밋한 사람들, 심드렁한 사람들, 대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이 타성에 젖어서 그렇습니다. 신앙에도 뼈를 깎는 쇄신 작업이 필요한데, 그러한 고통스런 과정을 외면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답은 당연히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이란 당신 인생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십자가 죽음이란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셔야 했습니다. 정말 가고 싶지 않은 십자가 길을 끝까지 인내하며 순명하며 걸어간 그 결과가 영광스런 부활이었습니다. 결국 십자가 없이 부활의 참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극복 없이 부활의 영광은 없습니다.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니 예수님 부활을 온몸으로 느끼고, 예수님 부활의 영광에 깊이 참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매일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통을 기쁘게 참아내는 사람들, 자신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 시련이 다가올 때 마다 예수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매사에 극도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에게서 예수님 부활은 정말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매일 죽는 사람들, 특히 자신의 죄에서 죽고, 이기심에서 죽고, 교만한 마음에서 죽고, 용서 못하는 마음에서 죽는 사람들에게 부활 예수님께서 주실 은총을 정말 클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진리이자 교리인 부활 신앙,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에 대한 이해가 아주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매일 제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사람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에 담긴 의미를 깊이 헤아리는 사람들, 그 십자가에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 그 십자가를 통해 부활과 영생, 구원으로 넘어감을 굳게 믿는 사람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명하는 사람들, 매일 죽고 매일 부활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신앙은 절대로 어려운 교리가 아닐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