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파괴를 거슬러 건설을!

7월 11일[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하느님께서는 곤경에 처한 당신의 백성들을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위로와 격려, 도움과 사랑을 베푸시는데, 그중에 한 방법이 성인성녀들의 파견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베네딕토 아빠스 성인도 당시 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자 은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던 시대의 고통과 슬픔, 문제점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가슴 아파하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진지하게 고민하던 끝에 자신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살아가던 당시(AD 480-547) 유럽 세계는 민족 대이동의 시기였습니다. 잘 나가던 로마 제국은 힘을 잃고 쇠락해졌습니다.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이동해가면서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농부들이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헛수고였습니다. 침략과 전쟁, 파괴와 살육이 계속되던 불안정한 시대였습니다.

이런 전쟁과 파괴의 시대 앞에 베네딕토 성인은 ‘정주 수도회’ 건설로 응답합니다. 그는 ‘파괴를 거슬러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든든한 반석 위에 하느님의 집을 건설하는 건축가로서의 소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운 좋게도 베네딕토회 소속 이태리 신학생을 알게 되어 얼마간 베네딕토 성인께서 머무셨던 수비아코 수도원,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 수백명의 수도자들이 생활하던 대 수도원이었습니다. 지금은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졌고, 몇 안 되는 수도자들께서 힘겹게 이끌어 가시는 모습이 역력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이곳저곳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 높은 곳에, 그렇게 견고하고 엄청난 대수도원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아마도 외부의 침략과 약탈로부터 동료 수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높디높은 산꼭대기에 수도원을 건설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꼭 외형적 수도원 건설만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무엇에 앞서 전쟁과 파괴에 맞서 평화의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폐허가 된 건물을 일으켜 세우는데도 관심이 컸었지만 상처입고 피폐해진 사람을 건설(일으켜 세우는데)하는데 더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한 인간이 이 땅 위에 똑바로 서는 것,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이웃들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통해 사랑의 수도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한평생 노력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다 보니 동료 수도자들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했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지게 마련이지요.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웃들의 약점에 고정되었고 점차 마음의 평정을 잃어갔습니다.

지나치게 깐깐한 장상 베네딕토로 인해 수하 수도자들의 원성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서로 심각한 상처를 입히고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허약함을 잘 알게 된 베네딕토의 실망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의 완고함과 무기력함, 나태함 앞에 크게 실망했지만, 거기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크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그 누구도 침해하지 못할 고요한 방 하나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곳은 더 이상 흔들리지도 않는 장소, 더이상 파괴되지도 않는 장소였습니다. 거기만 들어가면 하느님과 나 둘만 마주 보는 아름다운 장소를 만든 것입니다.

베네딕토는 드디어 건축물 중에 가장 아름답고 든든한 건축물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개인용 내면의 성체, 내면의 감실, 내면의 지성소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 결과 베네딕토는 이웃들의 결점과 실수, 죄와 문제들 앞에서도 더 이상 좌지우지하지 않게 되었고, 그제야 흔들리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영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