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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가, 입니다.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떠나보냈다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참변을 당한 사람들, 혹독한 곤경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가르침에 따르면 사목자로서 당장 달려가 구체적인 도움을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허락하지 않아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사목자로서 맡은 소임에 충실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이 여의치 않습니다. 수도자로서 정주(定住)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하니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제 모습과 죽을 위험에 처한 행인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간 사제나 레위인의 모습이 어찌 그리 닮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척에 있는 동료 인간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과 슬픔을 강 건너 불 바라보듯 도외시하면서, 아무리 복음적 사랑의 실천을 큰 목소리로 외친다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사랑의 성체성사 역시 그것이 전례로만 이해되고 성전 안에서의 예식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 혼자만 요란스런 꽹가리, 속이 텅텅 빈 강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정성스럽게 매일 하느님께 올리는 분향이 거룩하고 감성적인 분위기, 자기도취에만 머물러있지 구체적 사랑의 실천이나 나눔, 희생이나 봉사로 건너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행동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큰 의미와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그에게는 다른 무엇에 앞서 큰 불행 앞에 선 한 동료 인간을 향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강한 측은지심이 있었습니다.

사실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은 가진 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방어하다가 강도들로부터 엄청난 폭력을 당했겠지요. 여기저기 얻어터져 피범벅이 되었고 초주검이 된 상태라 스스로 거동도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도 갈 길이 바빴지만 가던 길을 멈추어 서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하고 발뺌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강도당한 사람에 대한 응급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준 것입니다.

참사랑은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가!’입니다. ‘나중에’가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