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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들은 각자 자기 고향이 있으면서도 마치 타향살이 나그네와 같이 삽니다!

7월 3일 [연중 제14주일]

복음선포 여행을 떠나는 72 제자들을 향해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떠나라는 예수님의 권고 말씀이, 때로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사람이 일단 삼시 세끼 든든히 먹어줘야 복음을 선포하든 뭐든 할 텐데, 지갑에 단 몇십만 원이라도 있어야 장거리 여행길에 숙소도 잡고 씻기라도 할 텐데, 예수님께서는 그냥 맨땅에 헤딩하라 시니, 제자들입장에서 참으로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의 배경에는 하느님 나라 도래와 관련된 긴박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화강생, 그리고 공생활과 더불어 이제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과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목 빠지게 기다려왔던 인생 최고의 가치, 구세주 하느님께서 강생하셨고, 생명의 말씀이 시시각각으로 선포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대상들,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대상들을 초스피드로 내려놓고,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긴박함과 시급함의 결론이 곧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인 것입니다.

2세기 중엽 한 익명의 신앙인에 의해 쓰인 글귀는 ‘진정한 나그네’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고향이 있으면서도 마치 타향살이 나그네와 같이 삽니다. 시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수행하지만, 나그네와 같이 모든 것은 참아 받습니다. 타향 땅이 고향 같고 고향이 다 타향과 같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살고 있으나 하늘의 시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란 사명을 제자들을 부여하고 나서 세상으로 파견하십니다. 파견에 앞서 간단한 당부를 하시는데, 그 핵심이 어느 한 곳에 연연해하지 말고 ‘무심한 나그네’처럼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복음선포에 매진하려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무소유’, ‘집착으로부터의 탈피’, ‘버림’, ‘떠남’을 강조하십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보다 영원한 가치관, 보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대상, 그래서 인생과 목숨을 걸어 볼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작고 부차적인 것을 과감히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